한 남자의 사랑스러운 아내 그리고 한 아이의 소중한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납치·살해다. 사건이 일어난 지 3개월 후 피고인은 법의 심판대 앞에 섰다. 그런데 재판은 도무지 진척이 없고, 앞으로도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지난 9월 충남 아산시 소재 한 대형마트 여성주차장에서 주모(35·여)씨가 차량째 납치된 후 살해됐다. 이 사건은 이른바 ‘트렁크 살인’으로 전국에 알려졌다. 전과 22범의 김일곤(48)도 이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첫 공판부터 쉽지 않았다. 10월30일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하현국 부장판사)의 심리로 지난 열린 공판에서 김일곤은 “살생부 명단부터 조사하라”며 도리어 큰소리 쳤다. 그의 눈빛과 말투에서 뉘우치는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김일곤은 “내가 지은 죄를 인정하고 처벌을 달게 받을 각오가 돼 있지만, 그 전에 내가 지목한 28명 명단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살생부 명단은 그가 복수를 위해 과거 자신의 재판을 맡은 판사, 형사 등 총 28명의 이름이 적은 종이다.
지난달 11일 열린 2차 공판도 어처구니없이 끝났다. 김일곤은 방청석에 앉아있던 기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재판하는데 기자가 왜 왔어. 기자 내보내. 기사 내용이 하나부터 열까지 엉터리야. 함부로 기사 쓰는 거, 사람 죽이는 행위야!”
이 상황을 목격한 유가족은 가슴을 치며 “사람을 죽여 놓고 뭘 죽인다고 하느냐”며 소리를 질렀다. 이런 유가족을 보고 김일곤은 이렇게 되물었다.
“당신, OO일보 기자입니까?”
지난 11일 열린 3차 공판도 다르지 않다. 발언 기회를 얻은 김일곤은 무려 1시간30분 동안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야말로 일장 연설이었다. 변호사조차 한숨을 이어갔고, 검사는 지친 듯 눈을 감았다. 김일곤을 제외한 모두가 인내심을 잃어가는 시간이었다. 가장 속이 타는 사람이 유가족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피해자 주씨의 여동생 A씨는 재판이 있을 때마다 경남 김해에서 생업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온다. 비행기, 지하철 여러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말이다. 그렇게 지친 몸과 마음을 끌고 법원에 와서 듣고 가는 건 언니를 죽인 자의 ‘궤변’이다. 벌써 세 번째. 다음 공판도 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 기약할 수 없다.
A씨는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김일곤이 징역 사는 줄 안다. 하지만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고 그마저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가족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전에는 ‘차라리 김일곤이 그냥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 그럼 내 손으로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재판이 빨리 마무리 지어졌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김일곤의 궤변을 들어야 하나. 너무 아픈 기억이다. 이제는 좀 조용히 살고 싶다”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가끔 범죄자들에게 너무 많은 용인이 주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재판이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김일곤 공판을 취재하러 갈 때마다 혼란스럽다.
민수미 기자 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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