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학교 폭력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17세 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병원에선 그가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교를 자퇴했다. 부모는 그를 내쫓았고, 그래서 그는 노숙자 센터를 전전했다. 돈이 생기면 카페인이 잔뜩 든 에너지 음료를 샀다. 깨어 있기 위해서였다. 잠을 자지 않는 것은 성폭력이나 납치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그의 이름은 애슐리 니콜렛 프랜지파니. 그는 ‘애슐리’(Ashley)의 철자를 조합해 자신의 이름을 새로 지었다. 할시(Halsey). 3년 전 전 세계를 강타한 체인스모커스의 ‘클로저’(Closer)를 부른, 그룹 방탄소년단이 작년 4월 낸 ‘작은 것들을 위한 시’(Without Me)에 피처링한 바로 그 할시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다고 모두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스스로를 알아가고 다양한 일을 시도해보는 데 시간이 걸려도 괜찮다고요.” 최근 서면으로 만난 할시가 쿠키뉴스에 전한 이야기다. 할시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다인종의 피를 물려받았고, 양성애자이며, 양극성 장애를 앓았다. 그가 내면의 혼란을 토해낸 첫 정규 음반의 제목은 ‘배드랜즈’(Badlands), 우리말로 ‘불모지’였다. 음반은 미국 빌보드 음반 차트에서 2위를 기록했다.
그래서 “아무리 나쁜 상황이라도 언젠가는 좋아진다”는 할시의 말엔 힘이 있다. “어떤 일은 창피할 수도 있고 어떤 일은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하겠죠. 그리고 당신은 (그런 일들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게 될 거예요.” 할시는 ‘지금 당장 젊은 세대를 위한 음악을 만든다면’이라고 전제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성장하는 과정,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언제나 그렇게 아름답기만 하진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때론 훨씬 복잡한 일이죠.”
할시는 지난달 17일 ‘조증’(MANIC)이란 제목을 가진 음반을 냈다. 그의 세 번째 정규 음반이다. 할시는 “정신없이 흘러가는 인생의 현 시점에 관한 이야기”라고 음반을 소개했다. “아주 많은 감정을 느끼는 시점이죠. 저는 20대를 지나고 있고, 실수도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 실수의 결과는 더욱 무거워져요.” 음반은 팝을 거점으로, 컨트리와 일렉트로닉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른다. 할시는 “내 생각이 바뀔 때마다 음반도 바뀌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며 “음반을 만들던 당시의 갈팡질팡했던 모습이 고스란히 반영돼 다양한 사운드와 스토리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저스틴 비버, 체인스모커스 등 유명 가수들과 여러 번 작업했던 할시는 이번 음반에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를 불러들였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에 이은 두 번째 협업이다. 할시는 “방탄소년단과의 작업은 인생 최고의 경험 중 하나”라며 즐거워했다. 그는 특히 슈가의 솔로 믹스테잎 ‘어거스트 디’(August D)의 메시지에 깊이 공감했다고 한다. “내면의 생각과 어두운 면들, 아티스트와 개인을 오가는 고뇌가 고스란히 전달됐어요.” 신곡 ‘슈가스 인터루드’(Sugar’s Interlude)에서도 둘은 고민과 방황을 고민한다. 할시가 ‘나는 모든 걸 가지려고 했던 시간과 모든 걸 포기하려 했던 시간을 분리하려 해왔다’고 노래하면, 슈가의 랩이 이를 받아 “네가 바란 별들은 어둠 속에서만 뜬다는 걸 절대 잊지 마”라고 다독인다.
“다른 가수들과의 협업은 굉장히 재밌어요. 새로운 사운드를 실험할 계기가 되거든요. 최근엔 퓨처와 함께 포스트 말론의 음반에 피처링했는데, 이런 생각도 못 한 조합이 제겐 내면의 새로운 인격을 찾아내게 하죠. 올해도 많은 협업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함께 일해보고 싶은 가수들도 아주 많은데요. 드레이크, 숀 멘데스, 그리고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젊은 신인 아티스트들과도 작업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오는 5월9일, 할시는 ‘매닉’의 이야기를 라이브로 들려주러 한국에 온다.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매닉’ 음반의 발매를 기념한 공연을 여는 것이다. 할시는 “나와 매니저 모두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면서 “(첫 내한 이후인) 지난 2년여의 세월 동안, 한국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번 한국 방문을 무척 기대하고 있다. 지난번엔 한국의 친구들과 놀러 나가 서울 구경도 하고 처음으로 소주도 먹어봤다”고 말했다.
할시는 시인이고 운동가다. 그의 음악은 그의 발걸음으로 완성된다. 할시는 2017년 자살 예방 캠페인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불모지’에서 탈출했다. 이듬해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여성들의 행진’에서 자신이 직접 지은 시(詩)로 연설했다. 7세 때 이웃에 살던 남자아이의 집 옆 계단봉이 어쩌다 자신을 평생 괴롭힐 악몽이 됐는지, 17세 때 만난 남자친구는 왜 ‘제발’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아프게 했는지, 22세 ‘여왕’이 된 뒤에도 왜 여전히 보호받지 못했는지, 14세였던 그의 친구는 왜 낙태하지 않아도 되길 울며 빌었는지…. 이 모든 이야기를 엮은 시의 제목은 ‘나와 같은 이야기’(A Story Like Mine)였다. 할시는 외쳤었다. “그게 누가 됐든, 당신 이웃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세요. 그리고 숨이 찰 때까지 소리치세요. 자유를 뺏긴 모든 사람들에게 목소리가 되어주세요.”
“성장의 과정은 힘들고, 특히 어린 여성들에겐 더 힘들죠. 그 시기를 지나고 있을 많은 여성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군요. ‘용감해지세요.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세요. 스스로를 너무 엄격하게 대하지 말아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팽배하겠지만, 그런 압박은 진짜가 아니에요. 실수해도 괜찮아요. 세상이 다 무너진 것 같은 상황에도, 헤치고 나올 나올 방법은 언제나 있어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