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전쟁 소재 영화에서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일만 일어날 수 있다니. 영화 ‘라스트 풀 메저’(감독 토드 로빈슨)는 전투가 펼쳐지는 베트남 정글을 표현한 포스터와 달리 시종일관 차분하고 올바른 걸음걸이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전쟁과 관계없는 주인공이 관객들이 걸어갈 길을 알려주고 예상대로 훈훈한 결말이 나온다. 영화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 신경이 쓰이지만, 왜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전개다.
‘라스트 풀 메저’는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국방부 소속 변호사 스콧 허프만(세바스찬 스탠)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우연히 1966년 4월 최악의 미군 사상자를 낸 애블린 전투의 조사를 맡게 된다. 당시 전우들을 구하기 위해 부상병 치료와 전투에 뛰어들었다가 사망한 공군 항공구조대 의무병 피첸바거에게 명예훈장을 줘야 한다는 중대원들의 항의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처음엔 부정적인 태도로 사건을 대하던 스콧은 점점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베트남 전쟁을 간접 체험하게 되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라스트 풀 메저’는 철저히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전쟁을 구현한다. 국방부 소속 변호사 스콧 허프만은 친절한 가이드처럼 관객들과 같은 눈높이로 사건을 이해해간다. 주인공의 안정적인 성장 서사가 큰 뼈대를 이룬다면 그 주변을 메우는 건 살아남은 전우들의 이야기다. 스콧이 만나는 이들은 하나 같이 당당하면서도 가슴 아픈 사연을 갖고 있다. 남의 일처럼 느껴지던 이야기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그들이 왜 이 일에 매달리는지 이해하게 된다. 전쟁 당시를 재현한 장면들은 관객들의 이해를 돕고 무엇이 옳은지 확신을 더해준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신경 쓰이는 건 일부의 이야기만 들려준다는 점이다. ‘라스트 풀 메저’는 참전 용사들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담아낸다. 전투에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병사의 행동을 국가가 왜 기억해야 하는지, 함께한 전우들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능숙하게 설명해낸다. 하지만 반대편의 의견과 논리는 조금도 다루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은 이미 지나간 전쟁이라고 외치는 이들은 악역처럼 그려진다. 전쟁을 기억하는 동시대 베트남인의 입장이 완전히 지워진 것도 문제다. 전쟁 재연 장면에서 베트남 병사들의 얼굴은 거의 지워져 있다.
‘라스트 풀 메저’를 완성하는 건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영화 ‘어벤저스’의 윈터솔저 버키 역할로 익숙한 배우 세바스찬 스탠도 주인공의 서사를 잘 그렸다. 하지만 사무엘 L. 잭슨, 크리스토퍼 플러머, 윌리엄 허트, 에드 해리스 등 노년의 명배우들이 보여주는 대단한 연기 내공이 압도적이다.
오는 20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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