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범죄, ‘외로운 2030’ 문제일까

무차별 범죄, ‘외로운 2030’ 문제일까

묻지마 범죄 피의자 정유정·조선·최원종 모두 2030대
실제 조사에선 4050대 범죄율 높아
전문가 “사회안전망 확충? 실제 연쇄살인범 상당수는 중산층”

기사승인 2023-08-17 06:00:51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경찰과 경찰특공대원들이 순찰을 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잇단 ‘묻지마 범죄’와 ‘살인 예고’로 한국 사회가 공포에 휩싸였다. 이러한 공포는 은둔 청년 세대를 향한 우려 섞인 시선으로 이어졌다. 최근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의 피의자가 모두 20~30대, ‘고립된 외톨이’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은둔 청년만의 문제로 접근하는 걸 경계하고, 개별 사안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분석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묻지마 테러’ 시한폭탄은 은둔 청년?

평범한 중산층 집안에서 자란 서현역 살인사건 피의자 최원종(22)은 특목고 진학에 실패한 이후 가족과 떨어진 채 홀로 지냈다. 경찰 조사에서 불행하게 살았다고 밝힌 신림역 살인사건 피의자 조선(33)은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불우한 가정 환경과 취업 실패 등으로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품어 온 정유정(23)은 또래 여성을 무참히 살해했다.

이들에겐 모두 고립된 외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반복된 실패로 쌓인 좌절감과 고립은 사회를 향한 분노로 불붙었다. 앞으로도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청년들의 묻지마 범죄가 늘어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최근 검거된 피의자들이 20~30대였다는 점을 근거로 고립·은둔하는 청년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할 순 없다. 별다른 이유 없이,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폭행, 살인 등 범죄를 저지르는 묻지마 범죄엔 범죄자의 특성과 범행 동기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고립된 청년과 묻지마 범죄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경찰청의 공식 통계나 조사도 없다. 오히려 많은 자료에선 20~30대보다 높은 연령에서 묻지마 범죄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경찰청 이상동기 범죄 태스크포스(TF)가 지난 1월부터 범죄 수사결과보고서 등을 분석한 ‘묻지마 범죄’는 모두 18건이다. 피의자 연령을 보면 50대가 6명(33.3%)으로 가장 많았다. 30대 4명, 20대 3명, 40대와 60대 2명씩, 10대 1명 순이었다.

이전에 나온 연구 결과도 비슷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2013)’에 따르면 가해자들의 평균 나이는 37.98세다. 40대와 30대가 각각 33.3%, 31.3%를 차지했고, 20대는 18.8%다. 같은 연구원의 ‘동기 없는 범죄 수용자 재범방지를 위한 치료적 개입 및 제도화 방안 연구(2017년)’에 따르면 교정시설에 수용된 묻지마 범죄자의 평균 나이는 46세다. 40대가 37.9%로 가장 많았으며 20대와 30대는 각각 12.1%, 10.3%였다.

왼쪽부터 살해 피의자 정유정, 조선, 최원종. 부산경찰청, 서울경찰청, 경기남부경찰

2030대 정유정·조선·최원종, 무엇이 달랐나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를 한 세대의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한 접근이라고 분석했다. 프로파일러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떠도는 청년이 많으니까 묻지마 범죄를 당연히 많이 할 거다. 청년을 위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것은 당위적인 결론이다. 범죄를 다룰 때는 당위가 아닌 과학과 객관적인 수치를 근거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배 교수는 “정유정, 조선, 최원종은 경제 형편, 배경 등이 다른데 나이가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현상으로) 묶어버리는 것은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열악한 경제 형편 속에 자란 정유정, 조선과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최원종은 다른 매커니즘을 가졌다는 설명이다. 또 최원종은 이들과 달리 지난 2020년 조현성 성격장애를 진단받은 바 있다. 정유정과 조선만 놓고 보면, 학창시절 조용했던 정유정과 달리 조선은 미성년자 때부터 보험사기, 폭행, 무보험 차량 운전 등 혐의로 기소된 전과 3번이었다.

서경현 삼육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생물학적으로 2030대는 폭력성이 강한 호르몬을 갖는 시기”라며 “여기에 취업이나 입시 스트레스, 좌절, 타인과의 비교 등 사회에 불만을 품으면 폭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성향이 모두 묻지마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봤다.

최원종처럼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어도 장애 유형에 따라 나타나는 양상이 다르다. 최원종이 진단받은 조현성 성격장애는 성격장애의 일종이다. 성격장애는 △A군(편집성·조현형·조현성 성격장애) △B군(반사회성·경계성·자기애성·연극성 성격장애) △C군(회피성·의존성·강박성 성격장애)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조현성 성격장애에 대해 서 교수는 “외톨이”라며 “주변의 칭찬에 관심 없고 비난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사람을 살해해야 할 정도의 감정을 잘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그럼에도 공격성을 갖는 사람이 있다”면서 남의 비난에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 모방범죄 가능성이 있고, 편집성적인 성향이 섞이게 되면 피해망상이 발현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4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상가 골목에 21일 흉기난동 사건으로 숨진 20대 남성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됐다.   사진=박효상 기자

범죄마다 다른 양상, 사례마다 분석해야


전문가는 묻지마 범죄 예방을 예방하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과학적인 접근으로 원인을 파악하고 제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살률, 학교 폭력 등 여러 사회 문제와의 관련성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 교수는 “(해결책)으로 사회안전망, 복지 정책 등이 언급되는데 실제 연쇄살인범 상당수는 중산층”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일본의 도리마 범죄(길거리 악마)와 같은 사례가 한국 사회에서 늘어나고 있는 건 분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묻지마 범죄 연구에) 미국은 30년, 일본은 10년 이상이 걸렸다”며 “일본은 각 사건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기반으로 이에 맞는 유형과 대안을 세우고 정책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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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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