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한 주를 마감하며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앉았습니다. 이제는 한국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이 된 KBS ‘개그 콘서트’(이하 개콘)가 방송 중이네요. 재미있게 보고 있었지만 점점 웃음기가 사라지고 얼굴이 굳어갑니다. 개그라 볼 수 없는 불편한 장면들이 계속됐기 때문입니다.
11일 방영된 개콘으로 종일 인터넷이 시끄럽습니다. 발단은 개콘 코너 중 하나인 ‘사둥이 아빠 딸’입니다. ‘사둥이 아빠 딸’은 네 명의 쌍둥이 딸을 가진 아빠의 이야기를 통해 웃음을 주는 코너입니다. 이중 여름 역을 맡은 개그맨 김승혜는 새해 목표를 묻는 질문에 “꼭 김치 먹는 데 성공해서 ‘김치녀’가 되겠다”며 “오빠 나 명품백 사줘. 신상으로”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김치녀’는 여성을 비하하는 용어로 여성 혐오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서 주로 쓰입니다.
시청자들의 귀를 의심케 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지만 개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어 새 코너 ‘부엉이’가 말썽이었죠. ‘부엉이’에서는 산속에서 길을 잃은 등산객(장유환 분)이 부엉이(이상구 분)로부터 길 안내를 받던 중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모습이 등장했습니다. 이후 부엉이가 “쟤는 못 나나 봐”라고 하자 박쥐(박성호 분)가 “지금 낭떠러지로 떨어진 저 사람의 기분을 내가 알 것 같아”라고 말합니다.
개콘 시청자 게시판에는 ‘부엉이’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했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코너의 소재 등산객, 낭떠러지, 추락 등이 고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연상시킨다는 것인데요. 시청자들은 “개콘이 제정신이 아니다”며 일갈했습니다. “고인을 개그의 소재로 이용하다니” “폐지하는 게 답일 것 같네요” “보기 불편했다” “특정인을 연상시킨다는 점도 문제지만 사람의 죽음 자체를 개그 코드로 쓰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개콘의 실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렛잇비’ 코너에서 개그맨 이동윤과 영화 ‘겨울왕국’ 엘사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에 일간 베스트의 상징이 나왔었죠. 제작진은 “출연진이 소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였다”며 “특정한 의도는 없었다”고 사과했지만 논란은 쉽게 꺼지지 않았습니다.
2013년에도 있었습니다. ‘현대레알사전’ 코너에서 개그맨 박영진은 “더빙이란 입과 말이 따로 노는 것” 이라고 말해 성우 비하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이에 성우 정재현은 “‘현대레알사전’에서 보여준 개그는 사실 왜곡에 불과하다”며 진심 어린 사과를 원했지만 사과는 없었습니다.
2012년 캐콘 코너 ‘체포왕’에 등장한 한 캐릭터가 지적장애인 비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측은 “지적장애인을 등장시켜 동네바보로 표현함으로써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많은 아픔을 주고 있다”고 항의했습니다. 이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웃음 유발을 목적으로 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사회적 약자인 지적장애인을 놀리고 괴롭히는 설정은 이러한 행태를 조장하거나, 어린이들의 모방을 유도할 우려가 있어 관련 심의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되므로, 관련 규정을 준수하도록 방송법 제100조 제1항에 의거 ‘권고’를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개그맨과 코미디 프로그램 제작진의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에게 웃음을 준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소재 선정이나 표현 방법에도 고심이 따를 겁니다. 하지만 사랑받는 프로일수록 조심성과 배려심이 필요하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매달 시청자들의 수신료를 받고 있는 공영방송일수록 말이죠.
민수미 기자 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