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쇼트트랙 선수, 훈련 중 ‘하반신 마비’…하지만 책임자는 없다?

[단독]쇼트트랙 선수, 훈련 중 ‘하반신 마비’…하지만 책임자는 없다?

기사승인 2015-03-13 05:00:00

[쿠키뉴스=민수미 기자]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종별선수권 대회와 국가대표 선발전을 며칠 앞둔 아침, 이른 새벽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아이스링크장 도착 후 습관처럼 몸을 풀었다. 사고는 훈련이 시작돼 단체 운동을 하던 중 일어났다. 동료와 부딪혀 넘어지며 안전 펜스에 충돌했다. 촉망받던 젊은 쇼트트랙 선수는 그렇게 ‘하반신마비’ 판정을 받았다.

쇼트트랙 선수 A씨(26·남)는 2013년 3월8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위치한 광운대학교 아이스링크장에서 훈련을 하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A씨는 “앞에서 주행하던 선수의 한쪽 스케이트 날이 얼음에 박혀 넘어지면서 다른 쪽의 날이 내 얼굴로 급하게 들어왔다”며 “그걸 피하다가 뒤에 오던 선수와 부딪혔고 이후 안전 펜스와 충돌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이 사고로 척수손상에 의한 하지마비 증세를 보여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보행, 이동, 기립이 스스로 불가능하고 일상적인 생활도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2년 여간 큰 수술과 치료를 반복해 왔지만, 앞으로도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재활치료가 남아있다.

그런데 뒤늦게 알려진 이 사건은 그저 한 운동선수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보고 넘기기엔 간과할 수 없는 점이 많다.

‘안전 펜스’, 누구를 위한 시설물인가?

A씨가 넘어진 후 부딪힌 펜스는 빙판 위에 ‘넘어진 선수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A씨는 이 펜스 부딪혀 쇼트트랙 사상 유례가 없는, 하반신마비라는 큰 부상을 입었다. 쇼트트랙은 빠른 스피드로 빙상을 가로지르는 운동인 만큼 갖가지 위험에 노출돼있다. 펜스는 이런 선수들을 위해 링크장 안에 설치된 유일한 안전 시설물이다.

확인 결과 사고 당시 광운대학교 아이스링크장은 20cm 두께의 펜스를 사용하고 있었다. 실업이나 국가대표 선수들이 주로 이용하는 국내 유수의 아이스링크장들은 40~60cm의 펜스를 사용한다.

문제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안전 펜스에 관한 규정을 국제빙상연맹(ISU)의 규정으로 준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ISU는 국제 대회 규격 안전 펜스 규정을 40~60cm로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광운대학교는 권고 기준에 미달하는 펜스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 중인 자녀를 둔 학부모 B씨는 “펜스 교체가 되기 전 광운대학교 아이스링크를 이용했던 선수들이 얇은 펜스로 인해 다른 아이스링크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부상을 계속 입고 있었다”며 “학부형들이 링크 관계자에게 여러 번 펜스 교체를 건의했지만 이번 A씨의 사고가 나기 전까지 선수들의 안전을 위한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해당 아이스링크장이 20cm였던 안전 펜스를 A씨의 사고 후 50cm 두께로 교체했다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 돼버린 그림이다.

그러나 최근 만난 광운대학교 아이스링크 관계자는 “펜스 교체는 A선수의 사고 때문이 아니라 그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이라며 “사전 펜스 교체 요구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젊은 선수의 사고에 학교 측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후 선수들 개인 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우리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지금도 여러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설명했다.

‘훈련만 있고 책임은 없다?’ 선수만 외로워

사고 발생 후 지금까지 병원에 입원 중인 A씨는 “큰 수술을 받았던 대학병원들을 거쳐 현재 재활병원으로 오기까지 든 병원비만 해도 1억여 원에 달한다”며 “누구 하나 책임지거나 도와주는 사람 없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A씨는 자발적 개인연습도 아닌 단체훈련을 받던 중 사고를 당했다. 사고 과정에서 개인의 과실이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런데 왜 사고에 대한 책임은 이처럼 홀로 짊어지고 있을까?

광운대학교 아이스링크장은 1998년 개관과 동시에 ‘체육시설업자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다. 이는 체육시설업을 등록한 체육시설 업자 중 문화관광부령이 정하는 소규모 체육시설업자를 제외한 모든 체육시설이 가입해야 하는 의무 보험이다. 하지만 A씨는 해당 아이스링크장이 가입한 보험을 통해서도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이유는 보험 지급 면책사유에 있다.

광운대학교 아이스링크장이 가입한 체육시설업자배상책임보험은 ‘각종의 경기단체(협회, 연맹 포함)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운동선수 또는 그의 지도 감독을 위하여 등록된 자가 그 운동을 위하여 연습, 경기 또는 지도 중에 생긴 손해에 대한 배상 책임에 대해서 보상하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이 있다. 즉, A씨는 빙상연맹에 가입된 공식 선수이기 때문에 보험사의 책임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광운대학교 아이스링크의 문제는 아니다. 국내 굴지의 손해보험사 10곳의 체육시설업자배상책임보험을 검토한 결과, 약관을 공개하지 않은 몇 곳을 제외한 모든 손해보험사에서 비슷한 조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에 손해보험협회 측은 “전문 운동선수들은 일반 가입자보다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잦다”며 “위험요소가 크다 보니 보험사가 운동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선수들까지 보장을 해주지 못하는 것으로 유추된다”고 말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경우 훈련 중 부상 선수에 대한 상해보험 처리 규정이 있다. 이는 ‘연맹이 주관하는’ 사업(국가대표, 후보, 청소년, 꿈나무)과 관련된 훈련만이 대상이다.

A선수는 이후 사고와 연관된 선수들과 그의 코치, 광운대학교 아이스링크 시설 책임자를 형사 고소 했으나 ‘혐의없음’과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그는 최근 광운대학교 시설책임자에 대한 항고를 진행 중이며 민사도 준비하고 있다.

결국 빙상연맹에 가입된 A선수의 병원비나 미래를 위한 보상책임을 질 곳은 현재의 보험약관이나 규정상으로는 없다.

책임은커녕 관심도 가져주지 않는다. 빙상연맹은 지난해 8월 ‘빙상연맹 자체적으로 A선수의 훈련 중 사고에 대하여 조사 사실 여부’를 묻는 검사의 수사 협조 요청에 “본건에 대하여 조사한 사실이 없다”고 회신했다.

A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선수생활을 시작, 18년간 시간과 노력 그리고 한 달에 400여만원 정도 드는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었다”며 “꿈과 목표를 잃어버린 것은 물론, 중한 장애를 입어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울먹였다.

이어 “사고의 책임을 피해자인 저에게 덮어씌우려는 가해 선수들과 코치들, 아이스링크 관계자 등이 이번 사건을 통해 자신들의 양심과 책임이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길 바란다”며 “우리나라의 열악한 스포츠 시설들에 만연해있는 고질적인 병폐인 ‘안전불감증’을 해결해, 오늘도 얼음 위에서 구슬땀을 흘릴 동료와 선후배 선수들이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사고를 당하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min@kmib.co.kr
민수미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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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미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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