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안녕, 난 ○○야. 반가워. 네 이름은 뭐니”
쿡기자가 어릴 적 수일간 부모님을 졸라 갖게 된 인형이 있습니다. 당시 말하는 인형으로 또래 여자아이들 사이에선 꽤 인기를 누렸죠. 그러나 어렵사리 손에 쥐게 됐음에도 흥미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어떤 질문을 해도 대답은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친구야 안녕, 난 ○○야. 반가워. 네 이름은 뭐니”
일방적 소통이 주는 답답함을 어린 나이에도 느꼈던 겁니다. 그런데 이 비슷한 기분을 최근 다시 한 번 경험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취재를 진행하면서 말이죠.
지난 5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가며 인터뷰했을 때, 한 피해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정부도, 환경부도 다 야속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만든 회사들 있잖아요, 그 회사들이 제일 악질이라고 생각해요. 나라에서도 우리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이런 병을 얻었다고 인과 관계를 밝혔는데 왜 그들만 인정을 안 하느냐는 말이죠. 재판을 핑계로 피해자들과 대화하려 하지도 않아요. 답답해 죽겠어요.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일 있으면 해당 회사들 다 망한다면서요. 근데 우리나란 반대잖아요. 옥시, 홈플러스, 롯데, 코스트코 등등 다 장사만 잘해요. 떵떵거리면서….”
가습기 제조·판매 업자들과 소통이 안 되는 건 피해자들만이 아닙니다. 기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취재 요청을 하거나 연락이 닿아 유선으로라도 질문할 때면 다들 짠 듯이 “일단 메일로 (질문) 보내주시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죠. 그래서 질문들을 여러 가지 그리고 상세히 적어 보냈지만 돌아오는 것은 어렸을 적 가지고 놀았던 말하는 인형만큼이나 상투적이고 일관적인 대답이었습니다. 물론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고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피해자 530명 중 403명이 그리고 사망자 143명 중 70%가 사용한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판매한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답변입니다.
쿡기자는 피해자들과의 연락,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의 위해성 인정, 과거 “옥시 제품과 폐 손상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측의 입장 변화, ‘인도적 기금’ 명목으로 내놓은 50억과 관련된 문제 등 8개의 질문을 메일로 전송했지만 돌아온 건 질문과 상관없는 짤막한 멘트였습니다.
“공정하고 합당한 해결방안을 찾고 실행하는 것이 저희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또한, 모든 사안이 아직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사건의 인과관계를 떠나 고통 받고 있는 환자나 가족분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드리는 것도 저희의 매우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저희는 인도적 차원에서 50억원(약 300만 파운드)의 기금을 조성하고 환경부에 기탁한 바 있습니다. 해당 기금이 가급적 신속히 환자 및 가족 분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물론 다른 기업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지만, 기업들의 행태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갖은 방법으로 취재 요청을 넣어도 피하기 일쑤였습니다. 피해자들이 영국 옥시 본사에 방문 항의하고 ‘도보&자전거 항의 행동’ 캠페인을 시작하는 등 자구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는 최근까지도 말입니다.
며칠 전 인터뷰 했던 한 피해자 가족은 “옥시에서 피해자들과 개별 합의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4년간의 긴 험로에 지쳐 합의해준 분들도 있는데 합의금이 정말 터무니없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에 비유되는 이 힘들고 지루한 싸움에 중도 포기자가 하나둘씩 생겼고, 지금까지 사과 한 번 없었던 기업답게 현 상황을 처리하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원하는 건 ‘진심 어린 사과’와 ‘현실성 있는 대책’ 두 가지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마치 ‘인형과도 같은’ 기업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이뤄지기 힘든 소원이겠죠.
민수미 기자 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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