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파동’은 정부와 지자체의 안전불감증은 물론 소비자들에게 식품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당시 정부와 관계부처가 보여준 믿음직스럽지 못한 대응은 소비자 신뢰 하락과, 동시에 계란 소비량 감소로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식의 대응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적극적인 시스템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살충제 계란 파동은 불 보듯 뻔 한 일이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소매상 위주의 계란 유통구조다. 지난해 기준 계란유통업체수는 2414개로 전체 계란 생산농가인 1061곳보다도 많은 기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계란 가격은 바로 이 계란 유통소매상이 매입하는 가격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소매상 가격에 맞추기 위해 농가에서는 생산비를 절감해야하는 상황이다.
‘왝 더 독’, 말 그대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계란 생산에 대한 통계가 사실상 전무한 것도 문제다. 농가와 유통업자 모두 계란 생산과 판매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데다 통계청 역시 3000수 이상의 닭을 키우는 대형농가가 제출한 수치로 전체를 추정해 발표하는 정도다. 통계가 잡히지 않으니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나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폐사 등 문제가 생겼을 때 수급을 조절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AI 등 전염병확산에 무방비하다는 지적도 있다. 소매상들의 경우 농가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거래하는 만큼 검역과 방역 등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계란유통센터, GP(Grading&Packing)센터를 통한 계란 유통의무화다.
GP란 농장들로부터 계란을 수급 받아 세척·검사·파각검사·혈반검사 등을 거친 뒤 포장해 판매처로 출고하게 된다. 따라서 생산량 등 집계는 물론 검사 등이 일괄적으로 이뤄져 안전·위생수준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또 GP에서 난각표시 등을 일률적으로 진행할 수 있어 생산정보가 불분명한 난각 미표시 계란, 불법유통 계란 등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GP센터가 존재하기는 하나 법적인 강제성이 없어 하루 평균 생산되는 계란 4300여만개 중 절반 정도만이 GP를 통해 유통되는 실정이다.
1990년대 GP건설과 의무화를 통한 계란 유통구조 개선이 일부 진행되기는 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소매유통의 경우 사업자 중심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 GP로 물량을 집중한 뒤 출고하는 방식은 선호되지 않아 무위에 그쳤다. 2013년 역시 GP 건설에 대한 요구가 있었으나 정부 반대로 무산됐다.
살충제 파동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던 지난달 문재인 정부는 축산업 근본대책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국가식품관리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충분히 늦었다. 그러나 또 다른 살충제 파동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GP 센터 의무화가 시급하다. 제도수립과 인프라 건설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와 투자가 필요하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