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박환윤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은 지난 2007년 한국 사진작가협회 전주지부(지부장 박노성) 사무실 서재에서 사진집을 보다가 우연히 ‘박환윤 지리산 미니 작품집’ 을 봤을 때다. 비록 사진집은 작았지만 작품은 절대로 미니가 아니었다.
그때는 전주지부 사무실이 서신초등학교 앞에 있을 때였다. 바로 전화를 드리고 인후동 댁으로 방문하여 처음 마주 하였는데 박환윤 사진가는 비록 체구는 작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날카로운 눈빛에 시선을 사로잡는 그 무언가 있음을 바로 직감 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인연이 되어 아버지와 자식 벌되는 나이 차이에도 함께 지리산으로 틈틈이 촬영을 다니면서 값진 세월을 보냈다.
1932년 남원 수지 출신인 박환윤 사진가는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군산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어릴 적 남원 지리산 주변에서 살던 기억이 훗날 지리산에서 산 사진가로 활동 하는데 결정적인 모티브가 된 것 같다.
낮선 환경의 항구 도시에 적응하기 위하여 형을 따라서 도서관에서 일본어로 된 책을 거의 다 읽다시피 하셨단다. 이때 읽었던 책들이 자양분이 되어 훗날 사진 예술을 하는데 감성으로 크게 작용 했다고 하신다.
군산중학교 6년제를 마치고 서울대학교 사범대 물리학과에 입학을 하게 되고 졸업 후에는 전주 성심여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선생님과 함께 지리산 사진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많은 에피소드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옛날 교통이 좋지 않을 때 고기리에서 자기 제키 만한 배낭을 메고 정령치를 지나 만복대까지 올라갔던 일, 천왕봉에 텐트를 치고 있다 하산하는 등산객들에게 남은 음식을 얻어먹어 가면서 버티며 사진을 찍던 기억, 남은 쌀과 물을 페트병에 넣어서 땅에 몰래 묻어 두었다가 다음 촬영 때 사용 하던 지혜, 겨울 방학이 시작 되면 봄방학까지 52일간을 지리산에서 촬영하고 전주 인후동 아파트 앞에 들어서면 동네 어린 꼬마들이 무슨 ‘거지’가 왔다면서 놀리곤 했다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혼각서까지 쓰고서야 지리산에 갔다고 하는 이야기 등등…그래서인지 평생을 살아온 사모님께 미안한 마음에 함께 지리산 천왕봉까지 등반을 한 적도 있다고 하신다.
지금은 힘에 부쳐 산행이 어렵지만 여전이 마음은 지리산에 가 있다 지금도 하루 일과 중 거의 모든 시간을 지리산 사진을 정리하면서 보낸다.
자연 사진가로서 선생님의 철학은 확고하다.
‘일목일초(一木一草)’세상 모든 것이 소중하다고 자연을 대하는 자세를 가르치셨다. 우선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고, 사진가가 자기 사진에 반하면 발전이 없다고 하셨는데 완벽주의가 있을 정도로 본인 사진에 철저했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젊을 때로 돌아가면 “지리산에 있을 것”이라며, 미처 가보지 못한 포인트를 생각하며 아쉬워하신다.
카리스마 넘치던 그 시절 산 사진가는 이제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처럼 자신이 촬영한 지리산 사진을 들여다보며 옛날 회상에 잠긴다.
글. 안남사진갤러리 대표 황재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