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정치사 연구의 대가로 불리는 이 교수는 저서 ‘21세기에 다시 보는 해방후사’를 통해 “1945-1948년 국민당 군과 팔로군(중공군) 사이의 내전이 벌어져 북한이 중공군의 후방기지로 변모하면서 남북한의 통일은 ‘춘몽’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1931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만주 지역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는 “남북분단은 우리가 자치능력이 없어 그런 것도 아니고 민족 내부의 분열 때문도 아니었다”며 “당시 미국과 소련의 관계가 악화되었던 것도 종속변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저서에서 “1945년 대일 선전포고와 함께 만주로 진군한 소련군은 처음에는 중국 공산당에 국민당과 계속 내전을 벌이지 말 것을 주문했으나 1945년 미국과의 관계가 협력에서 대결 국면으로 돌아서자 만주 점령지를 중공군에 넘겨줬다”며 “스탈린은 또 중공군이 국민당 군에게 밀리자 북한 지역을 중공군의 후방 기지로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북한을 팔로군의 후방 기지, 그리고 공격기지로 제공한 스탈린의 조치로 인해 팔로군은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으나 한국 분단은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 (중략) 그 귀중한 전략적 요충지(북한)를 남한과 통일시킨다는 것은 염두에도 둘 수 없는 일이었다”며 “그렇게 될 경우 스탈린은 만주를, 그리고 나아가서 중국을 국민당과 미국에 넘겨주어야 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