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저기요~ 회장님, 회사 임원들이 힘들답니다

[친절한 쿡기자] 저기요~ 회장님, 회사 임원들이 힘들답니다

기사승인 2013-08-28 20:31:00

[친절한 쿡기자] 삼성그룹 A상무는 새벽 5시쯤 알람소리에 벌떡 일어납니다. 출근 준비를 한 뒤 우유와 빵 조각으로 아침을 때우고요. 6시20분쯤 회사에 도착해 컴퓨터를 켜고 업무를 시작합니다. 아침형 인간, 얼리버드형 인간입니다. 하루 종일 업무에 집중하다 저녁 7시 전후 회사를 나섭니다. 8∼9시쯤 집에 도착하면 늦은 저녁을 먹자마자 가능한 한 빨리 잠을 자려고 애씁니다. ‘내일 아침’이 걱정돼서입니다.

대한민국 최고 직장으로 꼽히는 삼성의 임원 일상입니다. 평일에는 가족들과 영화 한 편 보기가 쉽지 않고요. 친구들을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거나 취미활동을 하는 것도 부담입니다. 가족들과 아침식사는 물론 아침 운동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20년 이상 죽어라 일만 해서 가까스로 임원까지 올랐지만 삶은 팍팍합니다.

얼리버드 관행 눈치보기 1년

삼성 임원의 조기출근은 1년 전 시작됐습니다. 지난해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은 주 2회 아침 6시30분쯤 정기 출근했습니다.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도 자연스레 출근 시간을 앞당겼고요. 7월부터는 전 계열사 임원이 아침 6시30분까지 출근하기 시작했고, 이런 관행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해외 경영 구상을 마치고 귀국한 이 회장이 오전 8시30분쯤 출근하면서 한때 조기출근 관행이 해제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회장이나 최지성 실장이 나서서 언급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감히 말을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분위기입니다.

삼성 임원들의 조기출근은 우리 경제의 소비위축과도 연계될 수 있습니다. 지난달까지 최근 9개월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도 제기되고 있고요. 삼성그룹의 임원 숫자는 여느 중견기업 전체 근로자 수와 비슷합니다. 이 회장 등 회장 2명, 최 실장 등 부회장 6명, 사장단 80여명, 부사장단 130여명에 전무와 상무가 1900여명입니다. 임원급 인사만 2100명이 넘는 셈입니다. 이들이 조기출근에 얽매이면 그만큼 소비할 시간도 줄어듭니다. 가족까지 합쳐도 통계적 의미가 있는 숫자는 아니지만 삼성 임원들의 소비성향은 상징성이 적지 않습니다. ‘삼성 임원도 돈을 안 쓴다더라’는 인식은 소비여력이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금고에 돈을 쌓아놓고 지갑을 닫게 만들겠죠.

삼성은 제2의 신경영 신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성공의 역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갤럭시 시리즈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편중 현상에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입니다. 삼성은 미래 먹거리 발굴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특히 기존 산업 간의 경계를 허무는 융·복합은 미래 산업을 이끌 핵심 키워드로 부상했습니다.

창의성 위해 ‘조출’ 재고하길

이런 상황에서 40∼50대 임원들의 경험과 창의력은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입니다. 특히 미래를 위한 창의성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창의성의 기반은 자유롭게 사고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는 것입니다. 이런 창의성을 위해선 편안한 가정과 대인관계, 여유와 건강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합니다. 얼리버드가 돼서 시계추처럼 기계적으로 빠듯한 하루를 보내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창조경제를 표방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청와대 직원들에게도 오전 9시 정상출근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얼리버드형 업무스타일이 창조적 사고에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이 회장은 인재 경영에 선견지명이 있는 대표적 경제입니다. 그는 2002년 ‘인재 전략 사장단 워크숍’에서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의 직원을 먹여 살린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회장에게 제의하고 싶습니다. 창의성 있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 임원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조기출근 관행을 해제시킬 생각은 없는지.

국민일보 쿠키뉴스 오종석 경제부장 jsoh@kmib.co.kr
김상기 기자
jsoh@kmib.co.kr
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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