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민수미 기자] 글의 힘은 대단합니다. 읽는 사람을 웃기기도. 울리기도,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공신력 있는 매체에서 전한 글은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한 번 뱉어 주워 담을 수 없는 말 만큼이나 무서운 영향력을 행사하죠.
칼럼니스트 김태훈(35)이 자신이 기고한 칼럼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비교하는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달변가로 잘 알려진 그는 방송에도 자주 출연해 시청자들의 신뢰와 호감을 받아온 인물입니다.
그랬던 그가 최근 패션지 그라치아에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김태훈은 칼럼 초반 IS에 가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김군을 언급하며 “페미니스트들이 도대체 김군에게 뭘 어쨌길래 ‘차라리’ 그 무시무시한 IS를 제 발로 찾아가는 길을 선택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어 “페미니즘의 역사는 자생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부조리한 사회적 시스템과 불공평한 권위적 관계에 반기를 든 1960년대 청년 운동의 한 축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김태훈은 “현재의 페미니즘은 뭔가 이상하다. 아니, 무뇌아적인 남성들보다 더 무뇌아적이다. 남성을 공격해 현재의 위치에서 끌어내리면 그 자리를 여성이 차지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방향이 틀어진 페미니즘은 또 다른 괴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평등의 문제가 사라진 채 패거리의 이익만이 걸린 발언들이 쏟아질 때, 필연적으로 그 이익에 반하는 집단들은 새로운 광기로 무장한다. 우리에게서 공평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문제는 불평등을 조장하는 시스템에 있는 것이다. 싸워야 될 적은 남녀가 아니라 이 빌어먹을 시스템이다. 남과 여를 나누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고 대졸자와 고졸자에 서열을 매기는 시스템 말이다”라고 전했습니다.
글의 의도는 알겠습니다. 그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문제 삼는 건 그의 ‘표현’입니다. 대중은 “굳이 현재 많은 사람을 공포에 몰아넣는 IS와 비교를 할 필요가 있었나” “시기적으로 좀 그렇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자칫 오해를 살 수 있으니 헤드라인을 신중히 뽑아야 한다” “논란을 일으킨 김태훈씨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를 보는 것은 적절치 못한 처사라 생각한다. 사회자를 교체해 달라”는 등의 의견을 보였습니다.
김태훈은 지난 7일 해당 패션지를 통해 사과했습니다.
“부족한 글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그라치아 관계자분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 점 먼저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본래 글에 담고자 했던 의미와 전혀 다른 의미로 읽혀지게 만든 제 글에 대해 스스로도 많은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쓰고자 했던 이야기는 페미니즘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페미니즘이란 ‘단어’만을 사용해 무조건 편을 가르고, 남녀평등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자신들만의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장사꾼들에 대한 염려를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무슨무슨 ‘주의자’들은 차고 넘치지만 그들 말의 진의는 무엇이며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주의자’에는 반대쪽에서 남성우월주의를 부르짖고, 혹은 내 편 이외의 다른 모든 것들에 혐오를 드러내는 누구들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글의 처음 의도와는 전혀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에 대해선 사과드리며 구구한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또 다른 실수가 있을까 걱정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이죠.
해당 패션지도 “외부 필자의 원고를 여과 없이 게재했다”며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논란 진화에 나섰습니다.
김태훈이 4년째 진행하고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 독점 중계를 맡은 채널CGV 측도 9일 “사회자 김태훈의 하차를 두고 현재 내부 논의 중”이라며 “오늘 내로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논란이 될 발언을 일부러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온 나라가 IS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시점에 자신의 표현이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 거라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IS는 인질을 참수하고 산 채로 불태우고, 그 모습을 세계에 공개해 자신들의 위세를 과시하는 극악무도한 테러집단입니다. 그의 신중함이 아쉽습니다. 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