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넷서 사는 ‘잠재적 살해도구’…염산 유통 경로 열어준 ‘11번가’ ‘옥션’

[단독] 인터넷서 사는 ‘잠재적 살해도구’…염산 유통 경로 열어준 ‘11번가’ ‘옥션’

기사승인 2015-10-15 05:00:55

지난 9월 경기도 광주에서 한 30대 남성이 자신이 사는 빌라에서 전 여자친구 A씨(35·여)와 A씨의 친구에게 염산을 던져 1~2도의 화상을 입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남성은 A씨가 결별을 통보한 후 짐을 가지러 오는 것을 노리고 미리 염산을 준비해 이같은 짓을 벌였다.

이처럼 ‘염산 테러’ 사건은 잊을 만하면 등장한다. 화학 등 관련 분야와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염산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일까. 최근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서 고농도의 염산을 마땅한 규제 없이 판매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염산은 살해 혹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 도구가 될 수 있어 심각성이 크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는 최근까지 ‘왕수 제조 세트’를 팔아왔다. 진한 질산과 진한 염산을 혼합해 만든 용액인 ‘왕수’는 금과 백금 같은 귀금속도 녹이는 강력한 산화 용해성을 지닌다.

11번가에서 판매된 왕수는 35%의 염산, 68%의 질산을 혼합해 만들었으며 가격은 3만3000원이다.

왕수 판매 사실은 이달 한 네티즌이 이를 캡처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판매 중지된 상태다.



11번가가 왕수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을 당시, 또 다른 온라인 쇼핑몰 ‘옥션’ 역시 고농도의 염산을 팔고 있었다.

옥션은 지난 13일까지 20% 농도의 염산 1㎏을 4만7960원에 판매했다. 개인판매를 제한한다고 명시해 놨지만, 기자가 ‘비회원구매’ 경로를 이용, 무통장입금 방법으로 주문하기까지 어떠한 제약도 없었다. 물론 실제 구매는 하지 않았으며, 이를 옥션 관계자에게 일러준 이후 해당 염산은 판매 중지됐다.

안전장치 없는 유해물질 판매를 바라보는 다수의 우려에도 불구, 온라인 쇼핑몰 측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11번가 관계자는 “염산 등 실험시약류는 법적으로 온라인 판매에 제약이 없는 상품”이라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고객 피해가 없도록 지난 9월부터 중점적으로 모니터링을 시행, 염산의 농도 구분 없이 판매 금지 조처를 하고 있다”며 “판매 논란이 된 상품은 모니터링을 하는 과정에 누락된 상품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해당 염산은 지난 9월부터 지금까지 한 명의 고객이 산 것으로 조사됐고, 확인 직후 회사 측에서 결제를 취소해 상품이 배달되지는 않았다. 판매자 아이디도 정지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니터링을 시행하지 않았던 9월 이전 구매자의 숫자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위험한 화공 약품에 접근이 쉬운 온라인과는 달리 오프라인 화공 약품점에서 염산을 살 때는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판매자에게 주민등록증을 제시해야 하며 따로 이름, 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날짜, 사인 등을 기재해야 하고 사업자등록증 사본도 제출해야 한다.

판매자 역시 화공 약품을 다룰 수 있는 허가증을 소지해야 하며 정기적인 안전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문제는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 중개인 역할을 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화공 약품 판매자를 대하는 방법이다. 엄격한 잣대의 오프라인과는 달리 구매자는 쇼핑몰에서 화공 약품 판매자의 허가증을 확인할 수 없다. 이런 경우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자의 신원을 확인해 줘야 하지만 실상은 허술하다.

옥션 관계자는 “안타깝게도 화공 약품 판매자들의 허가증을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다”며 “다만 위험한 물건들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판매 중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강원대학교 화학과 김진호 교수는 14일 “염산에서 나오는 염화수소기체는 히틀러가 유태인을 학살할 때 쓰기도 했다”며 “그만큼 위험한 물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20%나 35%의 염산의 경우 냄새만으로 실핏줄이 터져 코피가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외국의 경우 강 산이나 강 염기, 실험용 알코올조차 일반인은 시중에서 구입할 수 없다”며 “위험한 약품들은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민수미 기자 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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