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24일 살인 등 8개 범죄에 대해 양형기준을 설정한 것은 근대 사법사상 획기적인 일로 평가된다. 1차여서 8개 범죄에 한정돼 있긴 하지만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릴 경우 사법 불신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형기준 어떻게 설정됐나=독일 등을 중심으로 한 대륙법 계통 국가는 특별한 양형기준이 없다. 양형 판단은 판사 고유의 영역이라는 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대륙법 체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 마땅한 양형기준이 없었다. 이 때문에 판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형량을 조절할 수 있었다. 고무줄 형량이라는 비판도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양형기준이 마련되면서 판사의 양형 재량은 상당부분 줄어들게 됐다. 또 집행유예 기준도 분명하게 설정해 남용을 방지했다. 살인의 경우 9가지 범위 내에서 형량을 조절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재판은 양형요소 하나하나에 따라 형이 달라지는 만큼 이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재판정에서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양형위는 한국적 특성에 맞는 고유의 양형기준 마련을 위해 2004년∼2006년까지 확정된 4만3000여건의 형사사건을 조사해 광범위한 양형인자를 분석했다. 이와관련한 공청회도 지난해 11월과 2월 거쳤다. 일반인 1000명과 전문가 2294명을 대상으로 개별면접 등을 통해 양형에 대한 인식도 확인했다.
이를 통해 뇌물과 성범죄, 횡령, 배임에 대해서는 형량범위를 상향조정키로 의견을 모았다. 지배주주나 경영인 등에 대해서도 통일적으로 적용되는 양형기준을 설정해 유전무죄 시비를 불식시키려 했다. 양형위는 올 7월부터 양형기준을 시행한 뒤 2기 양형위원회가 출범하면 8가지 범죄 외에 추가로 양형기준을 만들 생각이다. 또 기존의 양형기준에 대한 보완도 이뤄진다.
◇구체적 적용기준=A씨는 회사 자금담당자와 공모해 회사의 한국은행 지불준비금 60억원을 자신 명의의 계좌로 이체해 임의로 사용하는 범죄(횡령)를 저질러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징역 5∼8년을 선고받는다. 범행 과정에서 피해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거나 범죄수익을 의도적으로 은닉한 경우 가중처벌을 받아 형량이 늘어나게 된다. 특히 횡령의 경우 횡령액을 기준으로 하되 범죄가 여러차례일 경우에는 이를 모두 합산해 양형기준을 선정토록 했다. 따라서 대기업 총수의 배임이나 횡령사건이 발생할 경우 꼼짝없이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뇌물죄의 경우 기본적으로 뇌물액수에 따라 형이 결정되도록 했다. 5000만원이상 수수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실형을 선고하고 1억원 이상 뇌물공여자에 대해서도 징역 2년6개월∼3년6개월을 선고하도록 해 실형가능성을 높였다. 이에 따라 부처 공무원이 인허가와 관련해 7000만원의 뇌물을 받았을 경우 기존 징역 3년6개월이던 것이 징역 5년∼7년으로 늘어나게 됐다.
13세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강간죄도 원칙적으로 실형이 선고된다. 강간살인범에 대해서는 징역 12∼15년 또는 무기 징역을 선고하도록 했다. 양형위가 마련한 기준은 판사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기준을 따르지 않을 경우 판결문에 그 이유를 분명히 적시하도록 법원조직법에 규정해 강제성을 어느정도 부여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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