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선물하는 현대판 바리 공주의 탄생

죽음을 선물하는 현대판 바리 공주의 탄생

기사승인 2012-11-30 17:08:01

[쿠키 문화] 지난해 문학상 수상작 중 가장 많이 팔렸던 책은 제1회 혼불문학상 ‘난설헌’이었다. 최명희의 ‘혼불’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한 ‘혼불문학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난설헌’에 이어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으로 박정윤의 장편소설 ‘프린세스 바리’가 결정됐다.

문학성과 대중성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작품이라는 평이다. 제2회 혼불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활약한 류보선 교수 겸 평론가는 “’프린세스 바리’는 서서히 우리 소설사의 중심에서 사라져간 변두리 지역의 밑바닥 삶을 성공적으로 귀한시켰다는 점에서, 그것도 그들에 대한 단순한 관심을 촉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삶 속에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윤리적 좌표가 깃들어 있다는 점을 역사철학적으로 맥락화하면서 귀환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성과라 할 만하다”고 평했다.

박정윤의 장편소설 ‘프린세스 바리’는 바리데기 신화를 바탕으로 인천 변두리 지역에서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들의 삶을 디테일하게 복원했다. 매력적이면서도 신성한 디테일들이 작품 곳곳에 넘쳐나게 흩어져 있는 소설이다.

연탄회사 사장의 일곱번째 딸인 바리는 부모에게 버림 받고 산파 할머니와 함께 인천의 척박한 동네에서 산다. 바리데기 신화의 바리는 뒤늦게 자신을 찾은 부모를 만나 지극한 효를 행하지만, ‘프린세스 바리’ 속 바리는 전혀 다르다. 끝내 부모의 품을 차지하지 못하는 소설 속 바리는 자신의 본능적인 감각에만 충실하고 세상의 일반적인 규칙이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게다가 죽고 싶은 이가 죽음에 이르도록 돕는다는 ‘자살안내자’이기도 하다. 자기 안의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바리의 캐릭터는 어쩔 수 없이 세상의 원칙대로 살아가는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바리는 한때 호황을 누렸다가 몰락해버린 지역에 산다. 바리는 정규교육도 받지 못한 채 문을 열면 바로 앞에 기찻길이 있는 낡고 허름한 집에서 토끼 할머니와 지내며, 밑바닥 인생을 사는 바리는 중국인 소녀 나나진에게 세상 물정을 배워가고, 굴뚝 청소부 청하와 사랑을 키워간다. 그러던 중 바리 주변에서 몇 건의 죽음이 발생한다. 토끼 할머니와 함께 바리를 돌봐준 산파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옐로하우스에서 몸을 팔던 ‘유리’ 연슬 언니는 자살을 했다. 느지막이 만난 사랑이 죽자 청하의 할머니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프린세스 바리’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보여주며, 바리와 이들의 죽음에 얽힌 비밀스런 사건들을 풀어간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삶을 실패자의 이야기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고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지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오히려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기찻길이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작은 방에 모여 미래를 약속하고, 셋이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중고차를 사며 느끼는 그들의 행복은 우리의 일상 속에 항상 있으나, 미처 그 소중함을 돌아보지 못한 기쁨들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소설 속 인물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따뜻하고 바글거리는 생명의 실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는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우리도 누군가에게 가장 행복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펼쳐 보인다.

소설가 박범신은 “안정되고 감성적인 문체와 예민하게 끌어올린 문제의식, 우리네 밑바닥 삶의 디테일한 복원이 남다르다. 무엇보다 버림받은 바리의 사랑과 그 좌절이 매력적이다”는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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