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60% 해지, 넥슨 하청 탓…‘뿌리’는 버티고 있다

계약 60% 해지, 넥슨 하청 탓…‘뿌리’는 버티고 있다

간담회 열었지만 게임 이용자는 한 명도 안 와
뿌리, “애니메이션 업계에 대한 존중 해달라”
피해자에 대한 1300건의 허위사실 유포 행해져

기사승인 2023-12-29 21:34:02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김상진 스튜디오 뿌리 총감독. 사진=차종관 기자

발주사의 계약 해지와 넥슨의 하청사 책임몰이에도 불구하고, 스튜디오 뿌리는 악성 민원인들을 설득하겠다며 버티고 있다.

스튜디오 뿌리는 29일 오후 2시 서울 구로에 위치한 사옥에서 ‘넥슨 집게손 사태’ 해명을 위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기자회견은 김상진 스튜디오 뿌리 총감독, 장선영 스튜디오 뿌리 대표, 범유경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김민성 한국게임소비자협회 대표,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본래 이 자리는 게임 이용자들이 방문해 집게손 사태에 관한 논쟁거리를 질문하고 애니메이터가 답하는 간담회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름과 연락처를 밝히길 꺼린 게임 이용자들이 참여를 포기하면서 기자회견 형식으로 전환됐다.

스튜디오 뿌리 사옥 입구. 사진=차종관 기자

32년째 업계에서 그림을 그린 김 총감독은 ‘감독자가 검수 과정에서 집게 손가락의 의미를 몰랐다면 캐치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질문에 “여러 사람이 검수 과정에 참여한다. 원청과도 수시로 소통한다. 제가 몰랐더라도 추후 세 번 정도 검수하고 작화 감독, 파이널, 동화에서 모두 체크한다. 그런 구조에서 이유 없는 장면이 나올 수가 없다”고 단호히 답변했다.

그는 “저희가 해왔던 9년 간의 작업물들이 오해받는 게 가장 큰 피해”라면서 “연간 계약을 하는 스튜디오 특성상 다음 해 10월까지 일이 미리 잡혀 있는데, 그게 다 취소가 됐다”고 호소했다. 장 대표가 밝힌 2024년 상반기까지의 계약 취소 비율은 60%에 이른다. 범 변호사는 “사회적 논란이 있으니까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취지로 (연락이) 왔다”며 “논란이라는 게 이 사태밖에 없어 해당 이슈가 취소 이유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대표는 “여러 개발사 및 게임사의 요청을 받아 무상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 집게손 부분을 주먹을 쥔 모양으로 수정해주고 있다”고 대응 상황을 전달했다. 김 총감독 역시 “현재 논란이 된 손모양이 안 나올 수 있게 최대한 바꾸고 있다. 아무리 점검해도 걱정되는 부분은 발주사와 의논하면서 진행 중”이라고 첨언했다.

장 대표는 “넥슨과 후속 조치가 논의된 바나 공식적으로 입장을 받은 바는 없다. 서면 발송이나 법무팀 방문도 없었다.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와 한 번 통화하긴 했으나 그게 공식적인 입장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넥슨은 입장 표명을 진행하면서도 저희에게 관련 자료 요청이나 문의 역시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넥슨에 법적 대응을 고려하냐는 질문에 “9년 정도 일을 맡겨주셨던 회사이기도 하고 덕분에 우리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서 아직까지는 따로 대응할 계획이 없다”며 “발주사와 스튜디오 뿌리 간 입장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문제의 집게 손가락 장면 제작 과정을 설명하는 김상진 스튜디오 뿌리 총감독. 사진=차종관 기자

김 총감독은 문제의 집게 손가락 장면 제작 과정을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김 총감독은 “원화에는 집게 손가락이 존재하지 않는다. 원화와 원화 사이에 동화를 그리는 과정에서 집게 손가락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동화 작업 시 그린 집게 손가락이 ‘의도적으로 스리슬쩍 넣은 남성혐오 표현’이 아닌 ‘흔하고 자연스러운 손동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유명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집게 손가락들을 갈무리해 보여줬다. 그는 “이번 사태 이후 모든 캐릭터들이 주먹을 쥐고 있다. 여러 표현에 제약이 생긴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김 총감독은 “집게손가락이 의도적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면 이 사태는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 거라는 희망이 있다. 언제든지 게임 이용자들을 만나서 조금이라도 설명할 여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피해자 ‘댓서’는 회사 차원의 필요한 보호조치를 받고 있고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회사 구성원에 대한 지속적인 스토킹, 신상 유포, 사이버 불링에 법률 대응을 할 예정임을 전하기도 했다.

범 변호사는 “허위사실 유포나 평판 저하 등에 대응하기 위해 모니터링 팀을 가동하고 있다”며 “12월이 되고 나서도 계속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고 현황을 공유했다. 그는 “너무 많다. 피해를 입은 애니메이터 개인에만 해도 1300건, 스튜디오 뿌리를 상대로는 세 자릿수다”라며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 및 검토하고 조만간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김상진 스튜디오 뿌리 총감독, 김민성 한국게임소비자협회 대표,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대표. 사진=차종관 기자

회사 내부 분위기는 담담한 상태다. 김 총감독은 “모두 이 사태가 오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사태가 있기 전 퇴사한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잘 참고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장에서는 앞으로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한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논의도 진행됐다.

이에 대해 범 변호사는 “예술인권리보장법에는 예술인이 작업할 때 개입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며 “캐릭터가 움직이는 과정에서 집게 손가락을 그리는 것은 너무나 흔하고 자연스러운 동작인데, 이걸 수정하게 만드는 건 비용을 높이고 표현력은 낮추는 측면이 있다. 이는 예술인에 대한 개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에 신고해 시정조치를 받을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게임사의 결정권자가 관행상 계속 악성 민원들을 수용해 주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짚기도 했다.

지난달 넥슨은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에서 여성 캐릭터가 찰나의 순간 동안 취한 손동작이 집게 손가락 모양이며 ‘남성혐오’를 의미한다는 악성 민원을 발빠르게 수용, “홍보물 제작 과정에서 세심하게 검토하지 못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납작 엎드린 바 있다.

이어 28일에는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디렉터 명의로 “모든 외주업체 선정을 원점부터 재검토하고, 작업물의 품질관리·검수 시스템을 정비하겠다”는 공지도 이뤄졌다.

차종관 기자 alone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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