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 유통 총수들이 20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가운데, 이들의 ‘민간 가교’ 역할에도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2.0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유통업계도 미국 사업 공략을 위한 전방위적 소통에 나섰다.
21일 재계 등에 따르면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전날 트럼프 정부가 대외 VIP를 대상으로 공식 초대한 취임식 현장에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은 당초 국회의사당 실외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미국 동부의 한파로 인해 국회의사당 내 중앙홀(로툰다)로 급히 변경됐다.
당초 25만명이었던 취임식 참석자도 2만여명으로 줄었다. 취임식은 국회의사당 인근 대형 실내경기장인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개최됐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을 실내에서 개최하는 것은 1985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집권 2기 취임식 이후 40년 만이다. 취임식에는 미 상·하원 의원과 대법관, 정부 주요 인사들 약 6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와 각별한 친분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은 같은 개신교 신자로서 종교적인 가치관은 물론 정서적으로도 교류해온 사이다. 그는 지난해 말 트럼프 주니어의 초청으로 트럼프 당선인의 자택이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마러라고 리조트에 머물기도 했다. 당초 3박4일 일정이었으나, 트럼프 당선인과 만남을 위해 체류 기간을 5박6일로 늘렸다.
앞서 정 회장은 지난 17일 뉴욕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미국이라는 큰 시장에 다양한 창구가 만들어지는 것은 중요하다”며 “미국 사업이든 한국 사업이든 열심히 할 것이며 트럼프 주니어와 같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도 이번 취임식에 초청을 받았다. 앞서 김 의장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트럼프 주니어가 주최한 비공개 리셉션(만찬)에 참석해, 차기 미국 행정부 주요 장관 지명자들과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인 중 트럼프 차기 행정부 주요 인사와 직접 만난 것은 김 의장이 처음이다. 김 의장은 쿠팡이 한국과 대만 등 로켓 배송에 투자한 배경과 한국·대만·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투자 및 사업 환경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라 국내 유통·식품업계도 미국 관련 사업에 촉각을 세우는 분위기다. 롯데, CJ 등 유통 대기업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업 확장에 힘을 쏟고 있다. 롯데는 롯데케미칼을 중심으로 석유화학 사업과 함께 미국에서 호텔·식품 사업을 벌이고 있다.
CJ도 ‘비비고’ 브랜드의 인기에 힘입어 북미 시장에서 영토 확장에 나서고 있다. 2019년 미국 냉동식품 업체 슈완스를 인수해 만두, 즉석밥, 치킨 등 K-푸드를 현지에서 판매하며 현지 유통망을 확보했다. 지난 2월에는 비비고의 새로운 BI(Brand Identity)를 선보이며 K-푸드 신영토 확장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CJ푸드빌의 베이커리 브랜드 ‘뚜레쥬르’도 미국 매장 수를 늘리며 해외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108개의 매장 수를 오는 2030년까지 1000호점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인맥을 중시하는 트럼프와 국내 재계 인사 간 만남이 경제·산업 분야에서 한미 간 소통의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대내외적으로 불확실한 경영 환경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대미 창구가 단절된 가운데, 유통가 수장들이 성장성이 큰 미국을 겨냥한 경제 외교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과의 긴밀한 소통 창구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한미 간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해외 진출의 보폭을 넓혀나가는 데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