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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죽은 우리 아이가 아직도 ‘엄마’라고 부르며 문을 열 것 같아. 아직 아이 물건도 치우지 못했어.”
2일 경기 안양시 안양8동 한 낡은 다가구 주택 2층. 서랍 속에서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딸이 웃고 있는 사진을 꺼내는 이달순(43)씨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지난해 3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안양 초등생 유괴·살해 사건’으로 이씨는 딸 이혜진(당시 10세)양을 잃었다.
10평 남짓한 이씨의 집은 아직도 혼란스러웠다. 좁은 거실엔 베개와 이불, 빈 깡통 같은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흩어져 있었다. 지난 1여년 동안 죽은 딸에 대한 애절한 기억들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생전 딸이 사용했던 방만은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가족들은 여전히 그 방을 ‘혜진이의 방’이라고 불렀다. 찬 공기가 도는 방엔 혜진이가 쓰던 학용품과 상장이 그대로 진열돼 있었다. 이씨는 “장례식 때 3장의 사진 외엔 태울 수가 없었다”며 “하늘나라에서 혜진이가 서운해할까봐 일단은 그냥 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충 자리를 잡고 앉은 이씨는 먼저 부녀자 7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 강호순 이야기를 꺼냈다. 씻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난 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인근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또다시 연쇄 살인범이 검거되자 이씨는 격앙돼 있었다. 이씨는 “잘 생긴 그 놈 얼굴 봤냐. 천하의 죽일 놈이 가까운 곳에 또 있을 줄은 몰랐다”고 흐느꼈다. 이어 그는 “며칠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더라”며 “남은 가족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냐”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날 이후 혜진이 가족은 괴로움 속에서 살았다. 올해 고3, 고1이 되는 혜진이의 오빠와 언니는 부쩍 침울해져 집에 들어오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결국 몇달 전 직장을 잃었고, 이후 술에 의존해 잠에 드는 날이 많아졌다. 도시가스비 등 공과금은 몇달치가 밀려있고 생활비 조달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씨는 식당 일을 하러 나서면서 “오늘 따라 혜진이가 더 보고 싶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강호순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어떤 말을 하더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다시는 이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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