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차량도 형사처벌…‘굴욕적’ 교통사고율 고려한 듯

보험차량도 형사처벌…‘굴욕적’ 교통사고율 고려한 듯

기사승인 2009-02-26 21:3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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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헌법재판소가 종합보험 가입자 등에 대한 처벌 특례를 규정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4조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교통사고 피해자의 권리는 한층 더 강화되고 가해자의 책임은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위헌 결정 배경 및 의미=헌재는 교통사고로 중상해를 입힌 경우에도 특례를 적용하는 것은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과 평등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재판절차진술권이란 범죄의 피해자가 재판 절차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이 입은 피해의 내용과 사건에 관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 권리다. 종합보험 등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형사처벌을 면해주면 피해자는 이 권리를 행사할 기회를 잃게 된다. 또 10대 중과실이나 뺑소니로 중상해를 입은 피해자는 재판절차진술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반면 이외의 경우에는 제한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도 반한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헌재는 우리나라의 높은 교통사고율과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 교통사고 처리 관행도 문제 삼았다. 문제의 법조항이 교통사고를 내도 보험사에서 처리해주겠거니 하는 안이한 사고를 갖게 하고 피해자에게 중상을 입히고도 보험사에만 사고처리를 맡긴 뒤 나몰라라 하는 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검찰에 접수된 18만7766명의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사범 중 12만1134명이 공소권 없음 결정으로 형사처벌을 면했을 정도다. 한국의 교통안전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6위로 최하위권이다.

◇중상해 기준 마련 시급=헌재는 중상해가 아닌 경우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면해줘도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교통사고 피해의 신속한 회복과 전과자 양산 방지, 국민생활의 편익 등 입법 목적을 감안할 때 기본권 침해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경미한 교통사고 피의자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비형벌화하려는 추세라는 점도 감안됐다. 문제는 헌재가 위헌으로 판단한 중상해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헌재는 불구, 불치나 난치의 질병 등을 중상해의 예로 들었지만 이를 명확히 규정한 법규정은 없는 상태다. 경찰이 이날부터 보류한 교통사고 사건 처리가 재개되기 위해서는 중상해의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로선 법으로 제정할 것인지, 검찰이 실무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준용할 것인지부터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헌재의 위헌결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입법을 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이 경우 교통사고 사건 처리는 장기간 공전할 수밖에 없다.

◇부작용 줄일 대책도 필요=헌재의 결정으로 피해자의 권리는 강화됐지만 전과자가 늘어나는 등 부작용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교통사고 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처벌의사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는 반의사불벌죄이므로 피해자가 합의해주는 대가로 가해자에게 많은 돈을 요구하거나 압박할 수 있다. 책임소재와 범위를 둘러썬 법적 분쟁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단횡단하는 등 피해자의 과실이 있는 경우에도 모두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 피해자의 나이와 성별, 부상부위, 신체적 특성 등에 따라 상해 정도가 달라질 수 있는데도 중상해의 책임을 전적으로 가해자에게 지울 수 있는 지 등의 문제는 논란의 소지가 크다. 김일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진작부터 손을 봤어야 할 교특법에 대해 위헌결정이 난 것은 당연하다"면서 "이제부터라도 머리를 맞대고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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