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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문화] 열광할만한 공연이었다. 객석은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함성과 박수로 요동쳤고, 연주자는 최고의 기량으로 환호에 답했다.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38)의 공연은 왜 한국 관객이 그토록 그에게 열광하는지를 증명한 공연이었다. 정확히 오후 8시5분에 무대에 오른 키신은 피아노에 앉자마자 무서운 집중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는 피아노를 부술듯한 기세로 건반을 내리쳤고, 피아노는 그의 손길에 순종하며 강하고 분명한 소리를 냈다.
키신은 1부에서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모음곡 ‘로미오와 줄리엣’과 소나타 8번 B플랫장조 작품번호 84번을 선보였다. 2부에서는 자신이 가장 잘 소화하는 레퍼토리인 쇼팽의 곡들을 한층 다듬어진 솜씨로 표현했다. 마지막 곡인 ‘겨울바람’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호성과 갈채가 쏟아졌다.
이때부터 새로운 공연이 시작됐다. 키신은 공연 하루 전날 기자회견에서 “관객이 무대를 내려가지 못하게 하면 앙코르가 길어진다. 하지만 결코 억지로 앙코르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관객들은 그가 무대에서 내려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2006년 내한 당시 10곡의 앙코르를 선사했던 키신은 이번에도 10곡의 앙코르를 관객에게 선물했다. 10곡 중 7곡이 쇼팽의 곡이었고 프로코피예프와 모차르트의 곡도 포함돼 있었다.
그가 열 차례 피아노에 다시 앉는 동안 30여회의 커튼콜이 있었다. 앙코르를 거듭할수록 박수소리는 점점 커졌고, 연주가 완전히 끝난 줄 알고 나가려다가 앙코르 선율을 듣고 다시 자리로 되돌아오는 관객도 종종 눈에 띄었다.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공연장 규칙을 무시하고 이곳저곳에서 플래시가 터져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마지막 앙코르가 끝날 때까지 객석의 70% 이상이 차 있었다. 열정적인 앙코르를 마친 시각은 오후 11시35분. 공연이 시작된 뒤 3시간 30분이 지나있었다.
먼저 자리를 뜬 관객 중 상당수도 공연 후 있을 사인회 줄을 서기 위해 빠져나간 것이었다. 키신이 사인회 장소에 나타날 때쯤에는 사인 행렬이 공연장 로비를 가득 메웠다. 하지만 3시간이 넘는 연주에도 키신은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사인을 하며 자신을 뜨겁게 환대해준 한국 관객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인회가 끝날 때쯤 시계는 오전 12시3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키신은 이날 피아노 연주로 밤을 갈랐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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