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하는 12살 소희 “힘들지만 꿈 있어요”

노숙하는 12살 소희 “힘들지만 꿈 있어요”

기사승인 2009-04-12 17:06:01

[쿠키 사회] ‘집 없는 아이’ 소희(가명·12·여). 초등학생인 소희는 날마다 학교에 가는 게 싫다. 역한 냄새가 난다며 놀림을 당하기 때문이다. 혹여나 친구들이 노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봐도 두렵다. 그러다보니 소희는 이른 아침이면 공중 화장실에서 찬물로라도 고양이 세수를 하고, 탈취제를 몸에 듬뿍 뿌린다.

서울 신길동 학원가 한 건물. 옥상으로 통하는 철문 앞 두 평 남짓한 공간에 소희네 다섯가족이 머물고 있다. 영어학원에서 학생들이 다 빠져나간 밤 10시30분쯤이면 소희네는 어김없이 건물 앞에서 만나 뒤꿈치를 들고 5층 꼭대기로 올라간다. 옥상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는 스티로폼과 이불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곳곳에 깨끗하게 비워진 컵라면 용기와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문제집이 흩어져 있다. 소희네가 사용하고 있는 생활용품의 전부다.

소희네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전깃불도 없는 어두컴컴한 옥상 생활을 한지 벌써 3개월째다. 맹추위가 계속됐던 지난 겨울에도 식구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이불 한 장으로 지냈다. 이마저도 딱한 사정을 알게 된 건물 관리인의 배려가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소희네 가족이 노숙생활을 시작하게 된 사연은 구구절절했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피해 6년 전 엄마 황모(37)씨는 딸 셋과 막내 아들을 데리고 무작정 집을 나왔다. 이후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 정부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았다. 아이들이 잠에 들 시간에는 음식점에 나가 서빙일을 도우면서 어렵사리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 전세 보증금 500만원 등 전 재산을 사기당하면서 인근 영화관 등을 전전하게 됐다.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기도 전에 황씨는 만신창이가 된 자신을 추스리기조차 힘겨웠다고 털어놨다. 세상에 대한 원망은 말할 수 없이 커졌다. 황씨는 “대물림하지 말아야 할 가난을 물려줘 미안하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밖에 해줄 수 없는 나를 이해해주기 바란다”며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네 남매는 씩씩했다. 방과 후면 엄마가 걱정하지 않게 이리저리 노숙자들을 돕는 센터나 단체에서 나눠주는 식사로 근근이 끼니를 떼웠다. 가끔 행인들이 쥐어주는 단돈 몇 천원을 모아 일주일에 한 번꼴로 인근 여관에서 입고 있던 한벌의 옷을 손으로 빨고 편한 잠을 자기도 했다. 집안 형편 때문에 제때 학교에 가지 못해 또래보다 두 살 많은 첫째 딸 주희(가명·17)는 “3년만 있으면 내가 스무 살이니까 배 고프지 않게 해줄 게”라는 말을 동생들한테 입버릇처럼 내뱉었다. 소희는 “우리 네남매의 꿈은 똑같이 한 가지, 돈 많이 벌어서 엄마한테 새 집을 사주는 것”이라며 슬픈 미소를 지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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