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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문화] 가난한 달동네 뒷골목 ‘똥파리’들이 세계를 날았다.
올해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타이거상 등 국제영화제에서 8개 상을 받은 영화 ‘똥파리’가 16일 국내 개봉한다. 이 영화의 배우, 시나리오, 연출까지 1인 3역을 담당한 양익준(35) 감독을 최근 서울 소격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가족 때문에 힘들고 고민했던 것을 일기장 쓰듯 만든 작품입니다. 제 속의 이야기가 꽉 차 있었어요. 어릴 때 서울 난곡동에서 살았는데 환경이 좋을 리 없죠. 제가 겪은 이야기가 영화 내용의 주를 이룹니다.”
영화는 철거용역 깡패 상훈(양익준)과 여고생 연희(김꽃비)의 가족 이야기가 주축이다. 상훈은 술에 취한 아버지가 사고로 동생을 죽게 하자 자라서 용역 깡패가 되고, 밤마다 나이 든 아버지를 구박한다. 그러면서도 인연을 끊을 정도로 미워하진 못한다.
“상훈이 밤마다 아버지를 몰아세우는 것은 ‘나랑 이야기 좀 해요’라는 표현일 수 있어요. 언어를 잃어버린 남자니까요.”
상훈은 모든 감정을 욕으로 표현한다. 대사의 절반 이상이다. 분노와 슬픔, 사랑과 연민의 감정은 결코 긴 문장을 이루지 못하고 짧은 속어가 대신한다.
“유독 카메라가 피사체를 가까이서 찍은 장면이 많아요. 촬영감독이 핸드헬드(카메라를 직접 들고 찍음)로 찍었는데 인물이 카메라 밖으로 나가도 상관없다고 판단했어요. 그 여백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폭력과 가난이 아들에게 대물림되는 뒷골목. 외로운 영혼들이 만나 서로를 보듬게 된다는 설정은 여느 영화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가난을 ‘볼거리’로 만드는 것과, 가난한 삶의 현장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다르다. 양 감독은 인터뷰 내내 “모르는 것은 찍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시사회를 본 후 아버지께 ‘좀 불편하셨죠?’라고 물었더니 ‘이상하게 마음이 짠하더라’고 말씀하셨어요. 아직도 가족이 뭔지 머리로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마음으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영화는 폭력적이고, 불편하면서도 웃기다. 슬프면서도, 희망적이다. 양 감독의 자취방에서 스태프와 배우들이 모여 매일 밤 가족 이야기로 밤을 지새운 만큼 이 작품의 입체성은 더욱 살아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
인터뷰 전문
-시나리오, 감독, 주연까지 했다. 주연을 비롯해 주연들의 호연이 돋보인다. 40편의 단편영화에서 주조연을 맡은 경험이 이후 연출에도 도움이 됐나.
"나는 '연기한다'란 말이 싫다. 감독의 디렉션도 의미가 없다. 골격은 있으니까 표현하면 되는 거다. 감독들이 캐릭터 따라가라고 말을 하지만 배우는 캐릭터가 될 수 없다. 내가 (인물에) 들어가서 저 감정들을 끄집어내는 거지. 인간 안에 감정의 구슬이 꽉 차 있는데, 그걸 제대로 다 느끼지 못할 뿐이다. 사람마다 감정의 구슬이 다 다른 만큼 그걸 적재적소에 배설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사람이 슬프면 운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슬퍼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영화 속 상훈은 언어를 잃어버린 남자다. 하는 말은 오직 '씨발놈아'. 영화 대사의 절반을 차지하는 '씨발놈아'는 변주를 통해 담백하면서도 진심 어린 영화를 완성한다. 많은 대사가 아닌, 욕 한 덩이와 눈빛 한 줌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했다. 영화는 구질하지 않아서 더 강렬했다.
-그럼 배우에게 어떻게 동기를 부여했나.
"감정을 리허설하지 않았다. 본연의 감정을 해치고 싶지 않았다. 서로 상처 주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좋다. 처음에는 배우들이 어색해했지만 나중에는 (배우도) 정말 자유롭게 놀고 있더라. 영화 속 상훈의 친구인 고등학생 연희의 집은 실제 내가 살던 곳이다. 거기서 매일 밤 배우, 스태프와 술을 마시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남의 속내를 듣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 했고, 거기서 나눈 이야기가 영화를 만드는 큰 에너지였다. 그래서 더 진심이 담긴 영화다.
-영화 영어 제목은 'breathless'(숨 막히는)처럼 가정 폭력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실제 숨이 막힌다. 한 울타리에 사는 사람들이 주먹으로 상대를 가격하고 식칼로 협박하는 장면을 찍은 카메라는 마치 충혈된 눈 같다. "눈 깔지 말고 똑바로 보라"는 경고처럼, 폭력 장면을 클로즈업했다.
"시나리오 썼을 때부터 머리에 그림을 그렸다. 마음의 눈이 곧 카메라라고 생각한다. 촬영감독이 핸드헬드로(카메라를 직접 들고 찍음) 찍었는데 인물이 카메라 밖으로 나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 여백도 의미가 있으니까.
-국제 영화제에서 외국인들이 양 감독에게 '씨발놈아'라고 웃으며 인사한다더라
"맞다. '씨발놈아, 즐거웠어요'라고 인사한다. 제 친구 한 놈은 대화할 때 '씨발놈아'로 시작해서 그걸로 끝난다. 그런데 욕을 너무 맛있게 한다. 솔직히 그거 한 번도 안 쓰는 사람 없지 않나. 기자님도 쓰죠?
-실제로도 욕을 잘 쓰나. 무대 인사 때 관객들이 "욕으로 인사할 것 같다"고 말하던데.
"하하. 욕은 쓰지만 사람을 때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맞는 쪽이다. 촬영장에서는 애교가 많아서 별명이 '양마담'이다. 유인촌 장관과 독립영화 관계자들이 함께 모인 자리가 있었는데, 장관이 나한테 '상 받은 감독이 한 마디 하라'고 하더다. 나는 '중학교 때 그냥 술 먹고 담배 피고 본드 하던 사람이다'고 했다. 영화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찍는다고 확신한다. 국제영화제 다니면서 영어를 조금 배웠다. 왓(what), 웨어(where), 웬(when) 같은 거. 외국에서 이걸 못 알아들어서, (주연배우) 김꽃비에게 물었다. 나는 아직 분수도 못 뗐다. (기자가 "진짜요?"라고 말하자) 사람이 모를 수도 있지 않나. 얼마 전 모 일간지 기자가 "스킬(skill)이 중요하냐"고 물었는데 못 알아들었다. 안 믿기겠지만 대학도 나왔다. 상업고등학교 나온 후 군대 갔는데 대학 가서 공부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래서 전문대 갔는데 연기는 책에서 배우는 게 아니더라.
아버지의 폭력을 경험한 상훈은 자라서 용역 깡패가 되고, 오히려 늙은 아버지를 때린다. 연희와 상훈의 누나는 각각 아버지와 남편의 폭행에 시달리곤 한다. 굳이 묻거나 따지지 않아도, 자전적 영화라는 느낌이 드는 게 영화 '똥파리'다.
-어릴 때 부모님 속을 썩였나
"부모님이 내 속을 썩였다. 아니다. 나도 부모님 속을 썩였다. 우리 집은 지금 좋아지는 중이다. 시사회 끝나고 아버지께 '좀 불편하셨죠?'라고 물었더니 '이상하게 가슴이 짠하더라'고 말씀하셨다. 이 영화와 내 상황이 아주 똑같지는 않다. 용역 깡패를 한 적도 없고,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남을 때린 적도 없다. 오히려 누가 때리면 맞고만 있다. 다만 어릴 때 가난한 동네에서 자랐는데, 동네 친구들의 사연들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상훈은 자살 시도 후 쓰러진 아버지를 업고 병원에 가고, 연희는 미친 아버지의 밥상을 매일 차린다.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인가
"가족 때문에 힘들었고, 그래서 더 오래 고민한 것을 일기장 쓰듯 만든 게 '똥파리'다. 이걸 만들지 않고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가족의 문제는 어디서 시작할까 계속 고민했다. 문제의 근원은 아버지일까. 가족 그 자체일까. 아니면 역사일까. 아버지가 폭력적이어서, 괴물이 되고 싶어서만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자식들 먹여 살려야 하는, 돈 버는 기계가 돼 버렸다. 하지만 엄마는 가족이란 울타리에 속해 있다. 아빠는 바깥에서 치이고, 그나마 집에서는 숨이 트이니까 가족한테 풀게 되겠지. 오백원 넣고 펀치 오락기계라도 쳐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우리 아버지들은 그것도 몰랐다."
-어떻게 영화계에 입문했나.
"동네 친구가 방송 콘테스트에 나가서 춤으로 1등을 했다. 그 친구랑 술을 먹으면서 '너는 춤을 췄으니 나는 연기를 해서 탤런트를 하겠다'고 말했다. 한 번은 친구랑 길거리에 오줌을 싸다가 갑자기 오줌 위에 내가 엎드려 죽은 척 한 적도 있다. 친구가 내 연기에 속더라. 재능이 있나 싶었다. 공주영상대학 연예연기과에 입학했고, 독립영화 등에 출연하면서 영화계에 들어왔다."
-국내 시사회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주류 영화계와 동떨어져 있던 사람이 갑자기 많은 관심을 받으니 어떤가.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다. 붕붕 뜨는 것 같고, 주위 사람들이 그럴 때일수록 조심하라고 하더라. 나 혼자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고, 곧 짱 박힐 생각이다. 상업영화 감독 제의도 두 번 받았지만, 내가 모르는 이야기는 영화화하고 싶지 않아 거절했다. 지방에 갈까도 생각 중이다.
영화는 폭력적이고, 불편하면서도 웃기다. 슬프면서도, 희망적이다. 양 감독의 자취방에서 스태프와 배우들이 모여 매일 밤 가족 이야기로 밤을 지샌 만큼, 영화는 삶의 조각이 아닌 활활 타오르는 삶의 현장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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