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물좀주소’,돈에 웃고 돈에 우는 인간상 그려

영화 ‘물좀주소’,돈에 웃고 돈에 우는 인간상 그려

기사승인 2009-05-29 16:29:01


[쿠키 문화]‘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이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가수 한대수의 ‘물 좀 주소’)

1970년대 한대수의 노래 ‘물 좀 주소’는 저항의 상징이자, 어두운 시대에 자유를 갈구하는 노래였다. 그러나 그 방법은 화염병과 같은 폭력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여인에게 사랑을 달라고 부탁하는 청년의 애원은 때로는 조르는 듯 때로는 떼쓰는 듯 멋이 가득했다. ‘물’은 70년대 청춘들의 열정이자 생기였고, 희망이었다.

6월4일 개봉을 앞둔 ‘물좀주소’(사진)는 돈에 웃고, 돈에 우는 인간 군상을 그린 영화다. 착하기만 한 채권 추심업자 구창식(이두일 분)은 궁지에 몰리자 결국 채무자 조을상(김익태)의 딸 결혼식에서 횡포를 부려 돈을 뜯어낸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채권 추심업자인 심수교(강인형)에게 돈을 갚지 못해 매번 시달린다. 심수교 또한 입사 시험에서 마흔아홉 번 낙방한 뒤 추심업계에 뛰어든 인물. 뒷골목 대장질에 염증을 느낀 구창식은 밥벌이의 지겨움과 비도덕성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이 거리를 떠나지 못한다.

‘100% 추심 달성’ 플래카드가 걸린 회사 옥상에서 한줄기 소나기를 맞으며 잠시나마 시원함을 느끼는 구창식의 마지막 모습은 영화 ‘물좀주소’가 한대수의 노래와 일부분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물좀주소’도 현실의 오아시스를 갈구하지만, 한대수의 가래 끓는 소리에 비해 훨씬 사회화되고, 얌전해진 모습이다. 인물들은 약육강식 사회에 대해 번민하고, 또 다른 유토피아를 꿈꾸면서도 여전히 이 체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어쩌면 이것은 한대수가 활동했던 70년대와 이 영화가 나온 2000년대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는 재미는 생태계의 먹이사슬과 닮아 있는 인간관계다. 1차 생산자부터 소비자까지, 종(種) 간의 먹고 먹히는 관계가 생태계를 이루듯, 인간관계에도 경제능력에 따라 급수가 정해진다. 영화 속 인물은 먹이사슬 구조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의 돈을 뺏은 구창식, 구창식의 돈을 갈취하는 심수교의 모습은 먹이사슬에서 ‘나’가 소비자이면서 생산자임을 증명한다. 돈은 이들 사이에서 돌고 돌 뿐, 줄어들거나 늘어나지 않는다. 그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방황하다 누군가에게 정착하고, 그에게 잠시나마 물을 제공할 뿐이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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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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