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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경제] 4일 오후 6시 정부과천청사 1동 4층 기획재정부 예산실. 복도는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 종사자로 보이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시장통을 방불케할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예산심의실 유리창 벽에는 ‘심의중이니 정숙해주세요. 안을 들여다보시면 안돼요’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지만 사람들의 눈길은 자꾸 방안으로 쏠렸다.
내년 예산을 한푼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부처 관계자와 불필요한 예산을 깎으려는 예산실 실무자 사이의 신경전은 퇴근시간임을 잊게 할 정도로 뜨거웠다. 이같은 진풍경이 벌어진 지는 한달째. 이달 중순 대통령 보고를 앞두고 내년 예산안이 사실상 확정되기 때문에 ‘밀리면 끝장’이라는 표정이 양쪽 모두에서 묻어났다.
예산철이면 매년 벌어지는 일이지만 특히 올해는 정부 재정에 경고등이 켜져 내년 예산안이 빠듯하게 짜일 가능성이 높아 예산실 안팎의 긴장은 한층 높아졌다. 재정부 관계자는 “각 부처가 예산이 줄 것이라는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는 지 올해는 부처나 공공기관 분들의 방문 횟수가 더 늘었다”면서 “한두시간 기다리는 것은 예삿일”이라고 말했다.
재정부는 지난주 1차 심의를 마치고 이번 주부터 2차 심의를 진행중이다. 심의는 각 부처가 예산 한도에 맞춰 만든 자체 예산안을 예산실이 수정, 보완하는 작업이다. 속칭 두번째 ‘잔디깎기’ 작업중인 셈이다. 각 부처나 지자체 등의 요구안을 내년 예상 재정수지와 재정운용계획에 맞춰 삭감하는 것을 예산실에서는 잔디깎기로 비유한다. 예산실 관계자는 “밀어도 밀어도 머리를 들고 일어서는 잔디만 끝까지 키우는 것처럼 꼭 필요한 필수사업만 골라 지원하는 게 예산 책정의 기본”이라며 “2차 심의는 예산안 결정의 후반전인 셈”이라고 말했다.
내년 예산의 최대 논란거리는 4대강 관련 예산이 추가로 얼마나 더 늘어날 지다. 야당이 연일 4대강 예산때문에 서민과 다른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예산이 줄어들고 있다며 정치적 공세를 펴고 있는 상황에서 현 정부의 ‘야심작’을 살려야하는 재정부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이 시기 예산실 직원들의 신경은 곤두서 있다. 작은 실수라도 나라살림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
철야 근무는 기본이다. 류성걸 예산실장을 비롯한 심의관 등 직원들은 새벽 1∼3시에 퇴근하는 일이 허다하다. 올해는 지난 3월 추가경정예산 편성까지 겹쳐 농한기(1∼3월)도 없이 강행군을 거듭하고 있다. 예산실 모 간부는 지난달말 아내의 생일도 잊었다고 한다. 이날 복도에서 만난 공공기관 관계자는 “상당수 예산실 직원들이 일이 밀려
밤 10시까지 저녁도 안먹은 경우도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각종 선심성·민원성 예산을 반영해 달라는 압력이 집중되는 것도 이 시점이다. 국회의원은 기본이고 공공기관장, 심지어 각 부처 장관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기도 한다. 이제 한달 남짓 지나면 내년 예산안은 확정, 공개돼 국민들로부터 성적표를 받는다. 그때까지 재정부 예산실은 24시간 가동될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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