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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쾅’ 소리가 들린 것은 지난 12일 오후 2시40분쯤이었다. ‘별 일 아니겠지’하는 생각으로 TV를 보던 문모(50·여)씨는 이어지는 ‘우르릉 쾅쾅’ 소리에 놀라 집 밖으로 뛰쳐 나왔다. 다른 주민 10여명도 골목길로 나왔다. 눈 앞에는 빗물에 쓸려 무너진 흙더미가 있었다. 언제 다시 산사태가 나 집을 덮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주민들은 폭우 속에서 우산도 챙기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장마철에 왜 옹벽 공사를 하느냐. 재난 대비 공사가 오히려 화를 부른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주민들은 불안한 마음에 잠을 자기 어려웠다.
폭우 속에 방치된 공사장이 흉기로 변해 주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13일 찾아간 서울 화곡동 봉제산 기슭 산41의 9 일대는 가슴을 쓸어내렸던 현장 그대로였다. 산에서 토사가 무너져 60㎝ 정도 쌓였고 공사 현장의 굴삭기도 절반 가까이 흙에 묻혔다.
산사태를 예방한다고 지난달 8일 시작한 옹벽 공사가 화근이었다. 공사장과 주택가 사이 거리는 6m에 불과했다. 집을 나와 다섯 걸음만 가면 바로 공사장이다.
주민들이 놀란 것은 처음이 아니다. 폭우가 쏟아진 지난 9일 오후에는 공사장을 덮은 막이 찢어졌다. 다음날 오전 1시쯤엔 토사 일부가 무너졌다. 주민들은 강서구청 공원녹지과에 안전망 설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어이가 없었다. “담당 직원이 휴가 갔어요. 담당자 이름은 모르겠어요.”
강서구는 지난해 1월 옹벽이 오래돼 위험하다는 민원이 제기되자 진단을 의뢰해 재건축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강서구는 지난 2월에서야 설계용역을 맡겼고 장마가 시작되는 지난달 공사에 들어갔다. 안전 점검 결과가 나온 지 1년이 지나서야 공사를 시작하는 늑장대응을 한 것이다. 공사는 오는 9월15일쯤 끝난다.
본보가 취재를 시작하자 강서구 측은 뒤늦게 2m 높이의 안전망을 설치했다. 곧 3∼4m 높이의 안전망을 추가할 예정이다. 강서구청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15일 “주거지와 공사장 사이가 좁아 안전망을 설치하면 공사 진행이 어려웠기 때문”이라며 “암벽을 고정하는 토사안정화 시설도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민 최모(60·여)씨는 “산동네 사는 사람이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야지 별 수 있나.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이렇게 했을까. 우리나라 행정이 다 이런 것 아니냐”며 허탈해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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