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생겼다. 키도 크고, 목소리도 좋고, 노래도 잘한다. 1등 가수가 되고 1등 작곡가가 된다….’ 그룹 비투비의 멤버 임현식은 중학생 시절 주문을 외듯 공책에 소원을 적어뒀다고 한다. 그는 소원을 비는 일이 우주에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고 느꼈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했던가. 임현식의 꿈은 하나씩 이뤄졌다. 2015년 발표한 ‘괜찮아요’로 ‘1등 가수’가 됐고, 이듬해 내놓은 자작곡 ‘기도’는 그를 ‘1등 작곡가’로 만들어줬다.
임현식은 자신의 신호에 우주가 응답한다고 생각했다. 물리나 화학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의 강력한 힘이 우주에서 오는 것이라고도 믿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꼭 종교 부흥회같네요.” 한참 동안 자신의 ‘우주론’을 펼쳐놓던 임현식이 멋쩍은 듯 웃었다. 첫 솔로음반 ‘랑데부’(Rendez-vous) 발매를 앞두고 서울 아차산로 큐브엔터테인먼트에서 만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우주를 정말 좋아했다”면서 “언젠간 우주에 가서 내 음악을 듣고 싶단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임현식은 ‘랑데부’에 우주를 담았다. 양자 얽힘(한 근원에서 태어난 한 쌍의 입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얽힌 상태는 풀어지지 않는 현상)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타이틀곡 ‘디어 러브’(Dear Love)를 비롯해 우주선 간의 결합(‘도킹’)과 월광(‘문라이트’) 등을 음악의 재료로 삼았다. 그는 지난 4월부터 음반을 만들어왔다고 한다. 회사 직원들 앞에서 음반 콘셉트와 콘서트 기획에 관한 발표를 했다. 밤엔 작업실에서 작사와 작곡, 편곡에 매달렸다.
“우주는 울림도, 소리도 없는 곳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우주에서 ‘에코’(Echo·메아리)가 연상됐어요. 얼마 전 음향 장비를 하나 샀는데, 리버브(잔향)와 딜레이(소리 지연)가 커서 우주적인 느낌을 내기에 좋더군요. 우주에는 단순한 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코드 진행도 단순하게 했어요. 수록곡들을 잘 들어보면, ‘랑데부’와 ‘디어 러브’의 코드 진행이 비슷하고, ‘도킹’과 ‘문라이트’도 비슷해요. 의도한 거죠. 특히 ‘도킹’의 경우엔, 만들어둔 후렴을 모두 지우고 녹음실에서 즉흥적으로 멜로디를 만들었답니다.”
비투비 음반에선 발라드 장르의 곡을 주로 쓰지만, 임현식의 솔로 음반은 얼터너티브 록에 가깝게 꾸려졌다. 그는 “밴드 사운드를 내고 싶었다”고 했다. 때론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과 내년 입대를 앞둔 상황이 부닥쳐 마음이 힘들기도 했다. 그럴 땐 ‘네가 무엇을 하든, 그것이 지금 네 모습이고 너의 음악이다’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힘을 냈다. 임현식은 “시간적인 여유는 부족했지만, 내 색깔을 보여줄 기회였다”라며 “군대 다녀오면 정말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천천히, 많은 곳에서 영감을 받으면서 작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임현식은 처음엔 이 음반 제목을 ‘시크릿 오브 유니버스’(Secret of Universe)로 지으려고 했다. “우주의 풀리지 않은 비밀은 사랑”이라고 생각해서다. 어려서부터 유독 우주를 좋아했다는 그는 한때 ‘외계인이 나를 납치해 가서 초능력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다고 한다. 무슨 초능력을 원하느냐고 물으니 냉큼 “순간이동”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행을 워낙 좋아하거든요. 오래 작업하다 보면 답답해질 때도 있고….”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자신이 쓴 곡이 얼마나 인기를 얻게 될지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그건 창작자에게 선물일까, 고통일까. 임현식에게 물으니 “전혀 받고 싶지 않은 능력”이라고 했다.
“즉각 성과를 내기보단 오랫동안 사랑받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질리지 않는 노래를 쓰자는 게 평소 모토이기도 하고요. 지금 당장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예를 들어 우주에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제 음악이 언급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영화 ‘서칭 포 슈가맨’처럼 제가 모르는 곳에서 제 노래를 사랑해주실 수도 있고요. 어쩌면, 다른 행성에서 더 대박을 낼지도 모르잖아요. 헤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