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랑 남달랐던 DJ

책 사랑 남달랐던 DJ

기사승인 2009-08-21 14:39:00
[쿠키 사회]“김대중 대통령님. 여기 와서 사람은 포기하지 않으면 꿈을 이루는 걸 느꼈지요. 그런데 저는 쉽게 수학 공부가 싫다고 포기하려고 할 때가 생각나서 부끄럽답니다. 감사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 올림. 2007.1.19.”

김대중 전 대통령. 그는 평생 책을 사랑하고, 책 속에서 위로를 받는 애서가였다. 40여권의 책을 출판하고, 서거 전까지도 일기를 쓴 그가 건립한 연세대 김대중 기념 도서관에는 책에 대한 애정과 국민들의 추억이 묻어나 있다. 1층 전시실 내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에는 초등학생 등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작성한 메모가 가득하다.

그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책은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책에 그려진 도전과 응전의 역사처럼 그의 삶 또한 도전과 실패, 극복과 성공으로 점철돼 있다. 그는 삶의 굴곡마다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고, 용기를 얻곤 했다. 1980년 7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청주교도소에 수감된 그는 아내에게 보낸 손바닥 만한 봉합엽서의 말미에 어김없이 “다음의 책들을 구해 넣어주세요”라는 글을 적었다.

81년 1월29일자 엽서에 적힌 내용을 보면 ‘1. 몰트만 <희망의 신학> 2. A.모로아<미국사> 3. 보마르세 <휘가로의 결혼> 4. 듀마<몬테크리스트> 5. 야스퍼스<니체와 기독교>…’라고 적혀 있다. 한 달에 한 번 보낼 수 있었던 엽서였기에 깨알만한 글씨가 오밀조밀 꽉 차 있다. 띄워쓰기를 한 것이 신기할 정도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패한 뒤 절망의 날을 보내던 그는 93년 1월 한 개의 상을 받고 용기를 얻었다. 바로 한국애서가클럽이 주는 애서가상이다. 그는 이후 이력서마다 애서가상을 꼭 기록하며, 두고두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당시 애서가클럽 회장을 맡았던 여승구(73·화봉문고 대표)씨는 “부산은행 사환이었던 박영돈씨와 공동 수상했는데 김 전 대통령께서 ‘박영돈씨와 같은 훌륭한 사람과 같이 수상해 영광이다’는 소감을 밝혔었다”며 “대통령 자택 지하에는 4면이 모두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퇴임 이후에도 일주일에 2∼3회씩 연세대 김대중 기념 도서관에 들러 강연 활동을 하고, 손님을 맞았다. 김 전 대통령이 기증한 1만6000권의 책은 올해 5월 1800권만 빼고 연세대 중앙 도서관으로 이전됐다. 이충은(34) 사서는 “도서관에 어린이들이 오면 꼭 안아주실 만큼 아이들을 좋아했다”고 기억했다. 장신기(35) 연구원은 “구술 작업을 위해 수차례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때마다 긴장한 나머지 땀을 흘리자 ‘넥타이와 자켓을 풀라’고 말하며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1년에 두번씩 도서관 직원들과 밥을 먹었다. 올해도 오는 23일 삼계탕을 먹기로 약속이 돼 있었지만 결국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지키지 못할 약속이 돼버렸다. 도서관 안내 업무를 담당하는 강종기(65)씨는 “만날 때마다 ‘춥지 않느냐, 밥은 먹었느냐’며 안부를 묻곤 했다”며 “참 인자한 분이셨는데…”라고 기억하며 말 끝을 흐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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