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빠순이로 보이니?…연예인 팬덤이 바뀐다

내가 아직 빠순이로 보이니?…연예인 팬덤이 바뀐다

기사승인 2009-09-21 17:34:02

[쿠키 사회] 좋아하는 연예인을 따라다니며 “오빠”를 외치던 그녀들이 변하고 있다. 더 이상 ‘빠순이’(극렬한 여성 팬을 비하해서 쓰는 말)에 머물지 않고 있다.

팬들은 동방신기의 불공정 계약, 2PM 재범의 탈퇴에 대항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자발적으로 기부를 하거나 봉사 활동을 하면서 관심사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팬들은 이제 대형 문화 자본에 대항하는 강력한 소비자 집단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팬덤(특정한 인물을 좋아하는 집단)의 진화를 소비자 권리 찾기라는 시각으로 보고 있다. 품격 있는 소비를 지향하면서 다양하게 변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동방신기 팬까페 ‘동네방네’는 이달부터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16일 예정됐던 콘서트 ‘SM 타운 라이브(TOWN LIVE) 09’가 무기한 연기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홈페이지에서 “팬이라는 특수성을 이용해 소비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기획사가 1주일전 일방적으로 콘서트를 취소했다”고 항의하고 있다.

팬들은 연예인의 인권 문제에도 적극적이다. 최근 동방신기 팬연합이 인권위원회 등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2PM 팬들이 ‘박재범 탈퇴 철회’를 촉구하는 지면 광고를 일간지에 냈다. 2PM과 동방신기 팬인 대학생 박수현(20·여)씨는 “연예인을 떠나 좋아하는 한 사람이 부당한 처우를 당했고, 이에 항의하는 것도 일종의 인권운동”이라고 주장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조대엽 교수는 “좋아하는 연예인을 매개로 팬들 간에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이 네트워크가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는 기폭제”라며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관심을 넓혀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팬들은 연예인에게 국한된 단순한 활동만 하는 것도 아니다. 슈퍼주니어 팬들은 지난 7월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쌀 160㎏, 헌혈증 171장, 현금 72만6520원 등을 모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다. SS501의 리더 김현중씨의 팬들도 지난 4월 350여만원을 ‘아름다운재단’에 냈다. 2PM 팬들은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헌옷을 모으고 있다. 팬클럽의 기부 활동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아름다운재단’의 서경원 1% 사업팀장은 “단지 연예인 홍보를 위해서 기부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했지만, 실제 팬들을 만나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오히려 팬들의 선행이 연예인에게 다시 긍정적 영향을 주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연예인 홍보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신곡이 발표되기 전에 조직적으로 홍보 물품을 들고 방송국을 찾아다니거나, 인터넷에서 친구들에게 ‘1인 1곡 선물 하기’ 운동을 펼친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황우석 박사 후원회처럼 최근 팬들도 마치 정치적 후원 활동을 하는 듯한 경향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김성수씨는 “1980년대 시민사회에 소비자운동이 시작됐듯, 10∼20대 팬들도 늦게나마 소비자 권리를 주장하게 됐다. 냉혹한 대중문화 시장에서 연예인의 인격을 보호하는, 품격 있는 소비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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