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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문화] 교양 프로그램을 대거 폐지할 방침인 교육방송(EBS) 라디오가 청취자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EBS 라디오는 오는 3월, 봄 개편을 앞두고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를 비롯해 ‘책으로 만나는 세상’ ‘고전극장’ ‘강지원의 특별한 만남’ 등 교양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대신 ‘모닝 스페셜’ ‘직장인 성공시대’ ‘팝스 잉글리시’ 등 현재 방송하고 있는 외국어 및 처세 관련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움직임에 청취권을 지키려는 청취자들의 반발은 재빨랐다. 7년간 장수한 교양문화 프로그램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 청취자들은 지난달 23일부터 온라인상에서 폐지 반대를 주장해오다 9일 현재 오프라인으로 옮겨 운동을 강화하고 있다. 또 이날부터 서울 도곡동 EBS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전개하는 한편 폐지 반대 서명서를 모아 교육방송 및 문화체육관광부에 전달할 방침이다. 이들은 문화계 인사들과도 연계 운동을 전개해 이미 서울연극협회, 한국뮤지컬협회, 공연프로듀서협회는 프로그램 폐지를 철회해 달라는 공문을 EBS 측에 전달했다.
청취자 모임도 강화되고 있다. 지난 6일 오후 8시쯤 청취자 10여명은 방송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 모였다. 모임을 주도한 신명숙(35)씨는 “입시 위주 교육을 지양해야 할 교육방송이 오히려 단순 지식만 좇는 교육 환경에 편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모임에 참석한 ‘한영애…’의 김연정(37) 작가는 “프로그램 관계자가 참석하는 게 맞는지 고민 끝에 오게 됐다”며 “청취자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지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청취자 모임은 봄 개편이 확정되는 17일까지 1인 릴레이 시위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9일 오전 EBS 본관 앞에서 ‘교육방송은 영어 학원으로 전락하는가’라는 내용의 첫 피켓을 든 윤한기(41)씨는 “교육방송이 영어 공교육 강화를 주장하는 이명박 정권의 나팔수가 되는 것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한영애…’ 폐지 반대 운동은 지난달 23일 생방송 중 김성수 문화평론가의 발언에서 촉발됐다. “프로그램이 폐지된다죠? 경쟁과 성장만 있는 사회에서 문화는 인간됨을 가르쳐 준다”고 말한 것. 당황한 진행자는 프로그램 마지막에서야 “정식 통보는 없었지만, 소문이 사실이 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문화 프로그램을 천덕꾸러기가 아닌, 자식 기르듯 살펴야 합니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후 한씨는 방송 마무리 멘트를 “문화지킴이, 한영애입니다”로 바꿨다.
이에 대해 EBS 측은 “아직 봄 개편이 확정되지 않았고, 이달 중순쯤 공식 발표하기 전에 어떤 말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유리 기자, 사진=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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