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 문화] 감독은 6년 전 전라남도에 위치한 고향집에서 작은 외할아버지의 일기를 보게 된다. 30여년 동안 몇 박스 분량의 일기에는 누군가로부터 쫓기는 듯한 문장이 유독 많았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가족사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누가 외할아버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문정현(33) 감독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할매꽃’은 좌익 활동으로 인해 스러져간 외가의 가정사를 다루고 있다. 문 감독은 2003년부터 5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친척들을 인터뷰했다.
“정말 충격이었죠. 그전까지만 해도 저희 집안에 남다른 슬픔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상처가 이미 체화되신 분들이라 자식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영화는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좌익 운동을 한 외할아버지 집안은 핍박을 받아야 했고, 그 영향으로 작은 외할아버지는 정신병을 앓으셨다. 평생 빨간색을 싫어하고, 집에 손님이 오는 것도 두려워했다. 또 외할머니의 오빠의 죽음은 한집안의 상처이자 비밀이었다. 좌익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한동네 친구가 쏜 총에 맞아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는 먼 친척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집안에 이 사실을 알리고 싶어한다.
“우리 집은 친척과 관련된 비밀을 숨긴 채 가해자 집안과 별 탈 없이 지내곤 했어요. 어머니가 고향을 떠나시면서 연락이 끊기긴 했지만요. 누군가를 처벌하려고 영화를 찍은 건 아니지만 화해를 위해선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나이 들면 선도, 악도 분명해지지 않는다. 시비가 불분명하고 모순적인 게 인생이다”고 충고한다.
“영화를 시작할 때보다 지금 세상을 보는 시각이 더 풍부해짐을 느낄 수 있어요. 역사와 화해하는 방법도 다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방법에 대해 영화에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죠.”
오랜 세월 노병으로 투병 생활을 한 외할머니 박순래씨는 2006년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에서 감독이 “할머니,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속삭이자 할머니는 갑자기 거친 숨을 내쉰다. ‘슬로브핫의 딸들’(2005년) 등을 연출한 감독은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12세가, 19일 개봉.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