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에 의약품 건강보험 청구금 ‘26조원’ 돌파…신약 급여체계 시험대 [신약 평가의 법칙③]

고령화에 의약품 건강보험 청구금 ‘26조원’ 돌파…신약 급여체계 시험대 [신약 평가의 법칙③]

기사승인 2026-03-27 06:00:11
‘혁신 신약’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건강보험 급여 체계도 시험대에 올랐다. 고가 의약품이 잇따라 등장하는 가운데 환자 치료 기회를 넓혀야 한다는 요구와 공적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 충돌하고 있다. 3편에 걸쳐 초고가 신약을 둘러싼 급여 평가 구조와 제도적 쟁점을 분석하고, 환자 접근성과 건강보험 재정의 균형점을 찾아본다. [편집자주]

2020~2024년 건강보험 총진료비 대비 약품비 현황.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고가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가 늘어나면서 건강보험 약품비를 둘러싼 재정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위험분담과 조건부 등재, 신속 심사 등 중증질환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면서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장치들이 고도화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26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도 신약의 신속 등재 필요성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급증하는 약품비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4년 급여의약품 청구 현황’에 따르면, 2020년 19조3377억원이던 전문의약품 청구금액은 다음해 20조6415억원을 기록하며 20조원을 돌파하더니 해마다 약 2조원씩 증가해 2024년에는 26조558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1월1일 기준 등재된 전문의약품은 2만667개로 전체(2만2011개) 93.9%를 차지했다.

약품비 증가는 급속한 고령화가 영향을 미쳤다. 65세 이상의 건강보험 급여의약품 청구금액은 총 약품 청구금액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2024년 총 급여의약품 청구금액은 26조9897억원으로, 65세 이상의 청구금액은 12조5832억원(46.6%)을 기록했다. 70세 이상의 급여의약품 청구금은 9조417억원으로 전체의 33.5%를 차지했다.

2020~2024년 65세 이상 건강보험 급여의약품 청구 현황.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건강보험 재정 부담은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자 확대에 따라 해마다 증가할 전망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4년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 116조2375억원 중 약품비가 차지한 비중은 23.8%(약 27조6645억원)로 전년(23.6%)보다 0.2%포인트(p) 확대됐다.

약품비 지출 세부 효능군 및 성분군 현황을 보면, 지출 상위 5개 효능군은 총 11조2000억원으로 전체 약품비(27조7000억원)의 40.4%를 차지했다. 항악성종양제(항암제)가 3조1000억원(점유율 11.4%)으로 가장 많았고, 동맥경화용제(3조1000억원, 11.2%), 혈압강하제(2조1000억원, 7.4%)가 뒤를 이었다.

“신약 명확한 평가·관리·등재 체계 강화돼야”

전문가들은 의약품 관리·등재 체계가 강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정부는 경제성평가를 비롯해 △진료상 필수약제 제도 △위험분담제도(RSA) △경제성평가 면제제도 등 급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3년 도입된 위험분담제는 신약의 불확실한 효과와 건보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약가와 환급 조건을 제약사와 정부가 사전에 합의하는 제도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에 따르면 2024년 9월 기준 국내 위험분담 계약 약제는 81개로, 환급액 규모는 약 5000억원에 달한다. 

경제성평가 면제제도는 2015년부터 도입돼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로 대체 가능한 치료법이 없거나,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질환에 사용되는 경우 등에 경제성평가를 면제하는 제도다.

권혜영 목원대 의생명보건학부 교수는 “2007년 경제성평가가 도입된 이후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다. 제도를 고도화하는 부분에서 정부나 학계의 노력이 부족했다”며 “어떤 신약이 기존의 치료로 충족시키지 못한 부분을 얼마나 채우는지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필요하며 그에 기반해 환자 필요도가 함께 평가돼야 한다”고 짚었다.

신약 경제성평가에서 주로 활용되는 QALY(질보정생존연수)나 ICER가 실제 환자의 치료 필요도나 혁신 신약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ICER를 보수적으로 평가하다 보니 환자 가족 간병 비용, 질병으로서 일을 못 하게 되는 노동력 상실 비용, 병원 방문 비용, 삶의 질이 개선되는 효과, 사회적 관점에서 편익과 비용, 신약 치료로 인한 장기적인 효과 등 원래 반영돼야 하는 요소들이 충분히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도 “ICER가 어느 수준까지 수용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관련 규정에선 ICER 임계값에 대해 질병의 위중도, 사회적 질병 부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 혁신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기준 심의 결과를 참고해 평가한다고 돼 있으나, 명시적인 기준값이 제시돼 있지 않아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면서 “비용과 효용 분석이라는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혁신 신약의 특성과 가치를 보다 적절히 반영할 수 있도록 평가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인정할 수 있을지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2020~2024년 전문의약품/일반의약품 청구 현황.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정부는 그동안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건강보험 약가의 사후관리 체계를 대대적으로 정비할 방침이다. 사후관리 조정 시기는 매년 4월과 10월, 연 2회로 일원화한다. 급여 적정성 재평가 체계도 명확해진다. 재정 영향이 큰 약제를 재평가 대상으로 우선하던 방식에서 해외 주요국에서 재평가에 착수했거나 기존 약효와 상충하는 새로운 데이터가 발표된 경우 등 재검토 필요성이 뚜렷한 약제를 중심으로 대상을 선정할 계획이다. 평가 결과에 따라 건강보험에서 제외하거나 본인부담률을 조정하는 등의 후속 조치도 간소화한다.

김 전문위원은 “다양한 제도 개선이 이뤄져 왔지만, 고가 혁신 신약이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제도의 지속적인 보완과 진화가 필요하다”며 “변화하는 치료 환경에 대응해 제도의 유연성을 어떻게 확보해 나갈 것인지가 앞으로 중요한 정책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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