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뇌사 장기 기증자 수가 370명으로 집계되며 2016년 최고치 도달 후 약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년도인 2024년 뇌사 기증자 수가 397명으로 13년 만에 처음 400명 아래로 떨어진 데 이어 감소 흐름이 더 뚜렷해진 것이다. 정부는 기증 장기 부족 문제 해소 방안으로 연명의료 중단 결정 환자를 대상으로 심정지 후 장기기증을 허용하는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지만, 국회 입법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12일 보건복지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에 따르면 뇌사자 장기기증 건수는 2020년 478건, 2021년 442건, 2022년 405건으로 코로나19 유행의 여파로 인해 저조했지만, 2023년 483건을 기록하며 회복세로 돌아섰다. 장기·조직 기증을 희망하는 사람들도 2021년 16만 명에 육박했다가 1년 뒤인 2022년 11만7584명으로 26% 급감한 뒤 코로나19가 주춤해진 2024년 들어 13만9090명으로 18% 증가했다.
그러나 의정 갈등에 따른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의료 인력이 급감하며 뇌사자 가족 면담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했고, 2019년 이후 줄곧 30%대를 유지했던 장기기증 동의율은 20%대로 추락했다. 2024년 뇌사 장기 기증자 수는 397명으로 300명대로 주저앉아 지난해에는 370명으로 더 떨어졌다. 2016년 뇌사 장기 기증자 573명을 정점으로 하락세가 이어지며 9년간 35% 감소한 것이다.
장기이식 수요와 공급 추이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는 2015년 2만7444명에서 2024년 5만4789명으로 10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했고, 2024년 기준 하루 평균 8명이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고 있다. 이식 대기 중 사망자는 2013년 1152명에서 2024년 3096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2019년에서 2024년 6월까지 이식 대기 중 사망자는 1만4159명에 달한다. 이식을 위한 대기 기간도 길어졌다. 신장 이식의 경우 평균 대기일은 2019년 2196일에서 2024년 2802일로 늘어났다. 췌장은 1263일에서 2104일, 심장은 211일에서 385일로 늘었다.
이식 수요와 달리 장기기증 공급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전체 장기 기증자는 2020년 3063명에서 2024년 2377명으로 감소했다. 장기이식 대기자 대비 기증자 비중은 1%가량에 불과하다. 2021년 1.1%, 2022년 0.9%, 2023년 1.1%, 2024년 0.8%로 떨어졌다.
뇌사 추정자의 가족 기증 동의율 역시 지속 하락 중이다. 2024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의학적 기증이 적합한 것으로 판단된 뇌사 추정자 중 가족의 기증 동의율은 2017년 42.9%에서 2024년 31.2%로 불과 8년 만에 10% 이상 줄어들었다.
DCD 도입 공식화했지만…입법 논의 난항
정부가 장기기증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작년 첫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해당 계획이 실질적인 실행으로 이어지기엔 사회적·제도적 공백이 많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제1차 장기·조직 기증 및 이식 종합계획(2026~2030)’을 통해 처음으로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DCD) 도입을 공식화했다.
DCD 제도는 심정지 환자 본인의 사전 동의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고 5분간 기다린 후 전신의 혈액 순환이 멈췄을 때 장기를 적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한국의 ‘장기이식법’은 뇌사자 장기기증(DBD) 절차만 규정하고 있을 뿐 심정지로 사망한 사람에 대한 기증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
정부와 의료계는 DCD가 허용되면 장기 기증자가 2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복지부는 DCD 도입 등을 통해 장기기증 희망 등록률을 2024년 3.6%에서 2030년 6.0%로, 같은 기간 인구 100만 명당 뇌사 장기 기증자는 7.8명에서 11.0명으로, 조직기증자는 2.8명에서 3.8명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특히 복지부는 DCD 법제화를 위해 장기이식법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 등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문제는 연명치료 중단 결정 전 기증 동의나 기증자 등록 등의 기증 절차가 가능해지려면 관련 법률 개정이 이뤄져야 하지만, 관련 법 개정이 사회적 합의 부족 등을 이유로 국회에서 번번이 무산됐다는 점이다.
일례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023년 11월 발의됐으나, 2024년 5월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후 2024년 6월 22대 국회에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연명의료결정법과 장기이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현재까지 유보 상태다.
미국, 스페인 등에서 전체 장기기증의 3분의 1 이상이 DCD를 통해 이뤄질 만큼 선진국들에선 DCD 제도가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세계장기기증·이식기록소(IRODaT)에 따르면 스페인의 경우 2024년 기준 DCD가 27.71명으로 DBD(26.2명)보다 더 많았다. 미국은 장기기증을 결정한 49.7명 중 절반에 가까운 21.3명(43%)이 DCD를 택했다.
박연호 가천대 길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DCD가 도입되면 현재 뇌사 및 생체 장기기증에 추가해 장기 기증자 대상이 확대되기 때문에 당연히 기증자 수가 늘어날 것”이라며 “실제 외국에서도 DCD 도입 후 20~40% 정도 장기 기증자 수가 늘어났다고 보고된다. 한국처럼 뇌사자 장기기증이 활성화되지 않는 나라에선 DCD가 상대적으로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DCD 도입으로 기증자 수가 늘어나는 점도 있지만, 장기기증 대상자에 대한 인식 개선 변화도 기대된다. 박 교수는 “뇌사 판정 이후에만 이식이 가능한 현 상황과 비교해 심정지라는 보다 일반적인 사망 및 임종 과정에서도 정상적인 장기는 이식이 가능하다는 인식 변화가 이뤄지면 국내 장기이식이 훨씬 활성화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자기결정권 존중 중요…‘옵트 아웃’ 제도 제정 필요”
DCD 도입을 위한 정부와 국회의 노력이 끊긴 것은 아니다. 최근 서미화 민주당 의원도 ‘한국형 DCD 제도’가 담긴 장기이식법 개정안과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의 핵심은 장기기증 대상자에 연명의료 중단자를 포함하고, 연명의료 중단 이행 전 기증 동의, 기증자 검사, 이식 대상자 선정 등 절차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순환정지 후 사망 시각을 ‘자발적 순환과 호흡이 불가역적으로 정지한 후 5분이 경과한 시점’으로 명확히 규정해 제도적 혼선을 방지했다. DCD 제도가 연명의료에 부정적 인식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정부는 DCD 기증의 윤리적 문제를 해소하고, 사회적 합의와 논의를 거쳐 국회의 빠른 입법 추진을 기대하고 있다.
김희선 복지부 혈액장기정책과장은 “DCD 법안이 실제 집행 단계까지 고려하면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며 “제도 도입의 속도가 나지 않는 이유는 연명의료 제도와의 관계, 생명윤리 논의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명의료 중단 제도는 자기결정권에 기반한 제도인데 장기기증 준비 과정이 그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오해받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 과장은 “두 제도가 충돌하지 않도록 법적 정합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암 환자나 고령 환자의 경우 현실적으로 장기 이식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나 혼선을 줄일 필요가 있다”며 “장기기증 역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의 한 형태로, 장기기증과 연명의료 중단 두 선택이 동시에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하되 실현 가능한 선택이 무엇인지 법적으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향후 정부 역할에 대해선 “생명윤리 관련 정책 부서와도 협업해 윤리적·절차적 문제를 함께 검토하고 있다”며 “윤리적 논의와 법적 정비를 병행하며 제도 도입이 신중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문가들도 장기기증·이식 활성화를 위해 DCD 도입은 필요하지만, 성급한 논의는 반발과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계한다. 박 센터장은 사망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심정지 후 장기 적출하기 전 최종 대기시간, 즉 ‘다시 회복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시점’에 대한 공통된 합의점이 명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심정지 후 장기이식 수술을 진행하는 의료진의 법적 책임에 대한 규정도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박 센터장은 “결국 심장사를 판정하는 의사, 장기이식 수술을 진행하는 의사,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의사 등 다양한 의료진들의 양심과 환자에 대한 예의 등을 얼마나 믿고 인정해 줄 수 있느냐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옵트 아웃(Opt-out)’ 제도 필요성도 제시했다. 환자가 생전에 장기기증에 동의하고 명시적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장기기증을 진행할 수 있게 법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옵트 아웃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에선 모든 사람이 잠재적 장기기증 대상자다. 기증을 거부할 경우 따로 신고해야 한다. 반면 한국은 본인이 장기기증을 희망하더라도 가족의 동의가 없으면 기증이 불가능한 ‘옵트인(Opt-in)’ 제도가 적용된다.
박 센터장은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도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옵트 아웃 제도에 대해 논의하고 법으로 제정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서 “결과적으로 뇌사 장기기증뿐만 아니라 DCD 제도도 의료진들을 포함한 국민들에 대한 지속적인 인식 개선과 교육이 선행돼야 제대로 된 제도로 정착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